11.2%. 12.5%. 11.9%. 지금은 믿기 어려운 수치이겠지만 우리나라가 지난 1986~1988년 실제 기록했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다. 이른바 ‘3저(저유가·저금리·원화약세)’ 덕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에 다시 ‘신 3저’가 찾아왔지만 환호성은 들리지 않고 아우성만 점점 커질 뿐이다. 왜 그럴까. 이데일리가 연초부터 요동치는 우리 경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정남 경계영 기자] 대기업 캐피털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K(40)씨. 그는 올해 우리 경제가 험로일 것임을 영업현장에서 몸소 느끼고 있다. K씨는 건설·물류·화물 등의 회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데, 올해 들어 더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K씨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알려지지 않았느냐”면서 “물류는 그나마 저유가 때문에 버티고 있지만 그만큼 물동량이 받쳐주지 않고 있어 업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3저는 기본적으로 우리경제에 힘이 된다. K씨의 설명처럼 3저가 아니라면 더 몰락했을 기업이 많았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 3저 현상의 반대를 떠올려보라. 망하는 곳이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 “오히려 지금이 나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 산업계, 나아가 우리 경제주체의 전반적인 체력은 떨어진 상태다.
새누리당의 한 경제통 의원은 “현재 우리 경제는 거시적 측면 외에 기업들의 경쟁력 자체가 떨어진 점도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경쟁력이 생길 수 있지만 (주력 수출품목이 겹치는)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도 함께 절하되다보니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위기 조짐을 체질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中 내수시장서 이길 수 있는 최종 소비재 승부해야”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내수 소비시장에서 잘 할 수 있는 서비스, 예를 들면 의류 화장품 음식 영화 등에서 성장동력을 더 찾아야 한다”면서 “이런 분야가 다 창조경제”라고 말했다. 전자 자동차 건설 조선 철강 등 주력 산업군도 강해야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강점 역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경제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꼽는 창조경제도 크게 △기술 융복합 △문화창작 등으로 나뉜다. 다만 둘 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특히 예술과 사업을 연결하는 문화창작 분야가 제자리걸음이라는 게 이 의원의 토로다. CJ E&M(130960) 외에는 딱히 성공 스토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 의원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결국 우리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것 외에는 해답이 없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꼽은 성공사례도 중국 내수용 산업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밥솥회사들이다. 지난 2005년 당시 422만달러 수준이었던 전기밥솥 수출은 10년 새 1717만달러로 불었다. 4배가량 성장한 것이다. 그 비밀은 기술력에 있었다고 한다. 내솥의 측면까지 코일을 감아 열이 골고루 전해져 밥맛이 일정하고 조리시간도 짧은 우리의 유도가열 방식은 중국에는 없는 방식이었다. 이는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이종명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우리 수출기업도 소비재와 서비스산업에서 혁신적인 제품으로 승부한다면 대륙의 지갑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IT(정보통신) 혹은 바이오처럼 유가 등의 영향을 덜 받는 기술형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확 늘려야 한다”(이한구 의원)는 것이다. 최근 한미약품의 성공도 결국 우직한 R&D 투자에서 비롯됐다.
◇“가격 탓 경쟁력 없는 게 아냐…우리만의 무기 필요”
아울러 대기업집단 중심 산업구조의 변화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주력 산업군이 전반적으로 중후장대 산업에 쏠려 있는데, 중견기업 혹은 벤처기업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의 기업정책은 대부분 몸집이 큰 대기업을 위한 것”이라면서 “중소기업 혹은 벤처기업을 정책의 중심에 놓으면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신 3저 현상은 비용을 절감하는 측면이 있어 그 자체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못 갖는 게 원가요인 압박 때문은 아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가격을 넘어 우리만의 무기를 더 장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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