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석유가 넘쳐나는 시대다. 중동 산유국과 미국 셰일 업계의 힘겨루기와 중국 등 신흥국 경제가 주저앉으며 빚어낸 현상이다. 끊임없이 생산한 석유는 땅 위에 저장할 공간을 찾지 못해 바다 위 유조선에 실려 주인을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됐다.
이렇게 바다 위에 떠다니는 원유만 1억배럴이다. 전 세계에서 하루 공급하는 양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다. 유조선이 몰려 있는 중국과 페르시아 만, 미국 남부 항만 주변에 교통정체를 발생시킨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러다 보니 국제유가도 배럴당 40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작년 여름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었다. 불과 1년 반 만에 반 토막 넘게 사라졌다. 시장에서는 바닥은 멀었다고 본다. 원유 공급과잉은 계속되고 수요와 직결된 세계경기는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가가 지금의 절반 수준인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상식선에서 국제유가 하락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반길 일이다. 특히 소비자로서는 자동차 연료비부터 겨울철 난방을 포함해 적잖은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유가가 1년 이상 지속하면서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휘발유값이 대표적이다. 국제유가는 지난 1년 사이 60% 이상 빠졌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같은 기간 ℓ당 2000원에서 1400원대로 30% 정도 하락하는 데 그쳤다. 기름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기 때문이다. 유가가 하락해도 소비자가 얻는 이익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셈이다. 초기에 반짝 효과가 끝난 뒤 세금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이상한(?) 기름값 구조에 대한 불만만 커지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저유가는 위협이다. 산업구조상 정유, 화학, 조선을 포함해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은데 이들 기업 매출액이 유가와 연동해 있기 때문이다. 또 저유가 원인 가운데 하나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경제의 부진이다. 기름이 싸다는 것은 우리의 주요한 수출시장이 부진하다는 뜻이다.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도 현재 저유가 구조는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저유가 시대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