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벨로퍼(부동산 개발회사)의 쇠락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백 회장은 1990년대 강변 테크노마트 개발사업을 성공리에 이끈 국내 디벨로퍼의 효시다. 백 회장의 프라임그룹은 한때 한글과컴퓨터·동아건설·신안·프라임 상호저축은행 등을 인수하며 초고속 성장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로 사세가 반전했다. 2011년 주력 계열사인 프라임개발과 신안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백 회장 자신도 프라임저축은행에 200억원대 부실 대출을 지시한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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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급성장했던 국내 디벨로퍼들은 이제 중국계 업체들의 활약을 바라보기만 하는 처지가 됐다. 가장 큰 원인은 2008년부터 이어진 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극단적으로 침체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좌초한 총 사업비 31조원 규모의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근본적으로 국내에서는 개발부담금, 공공기여, 세금 등을 모두 부담하고 나면 개발이익이 1000억원이어도 최종 마진은 200억원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이렇게 자본 축적이 덜 된 상태에서 위기를 맞으니 호황기를 보낸 디벨로퍼도 쉽게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개발업의 후진적인 자금 조달 구조도 문제다. 자본력 없는 디벨로퍼, 대출 상환 부담을 모두 짊어진 채 공사비를 높여 이윤을 남겨야 하는 건설사, 프로젝트의 가능성에 투자하기보다는 대출금 회수가 주요 목적인 금융사 등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것이다. 이는 사모펀드·리츠·개인투자자 등 다양한 경로로 자금을 조달하는 미국, 그리고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주요 금융기관과 대기업·종합건설업체가 직접 디벨로퍼로 활약하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신일수 한국신용평가 PF1실 연구위원은 “사업 초기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부동산 펀드와 리츠를 통한 금융 조달을 활성화하고 땅 임대료를 담보로 장기채권을 발행하는 등의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업계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행업체 관계자는 “그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대규모 개발사업에 도전하기보다 당장 돈이 되는 아파트, 오피스텔, 주택사업에만 치중했던 게 사실”이라며 “자생력을 잃고 간판만 겨우 유지하는 처지를 자초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정책실장은 “일본의 지역 개발을 주도하는 대형 디벨로퍼들은 모두 창의적인 기획을 바탕으로 임대·운영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며 “우리 업체들도 과거처럼 치고 빠지기 식의 단순 분양 이익에 기대기 보다 기획력을 키우고 핵심 테넌트를 유치해 장기적인 운영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