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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하나고 특별전형 꼭 없애야 하나

조영훈 기자I 2013.07.15 07:48:09
[이데일리 조영훈 기자] 하나고 특별전형 꼭 없애야 하나

조영훈 부국장 겸 금융부장

“제가 구걸을 해서라도 몇십억원 운영경비는 어떻게든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47년 금융인 생활을 접고 하나고등학교 이사장 직을 맡고 있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심경이 묻어나는 얘기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출입기자에게 말한 내용이다.

임직원 특별전형을 포기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보내줄 수 없도록 은행법이 바뀜에 따라 결국 하나금융은 하나고등학교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은행에 비해 임금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하나금융이 복지와 국가 백년대계를 꿈꾸며 만들었던 하나고등학교가 설립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말 기준 자산 172조원인 하나은행이 하나고에 출연한 금액은 지금까지 모두 합쳐 597억원이었다. 이 든든한 자금줄이 끊어질 위기에 몰린 셈이다.

하나고는 벌써부터 자율형 사립고의 성공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귀족학교 논란이 있었지만 공교육이 붕괴됐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산실이 많아진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특히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들도 대거 개교를 눈앞에 두고 있어 하나고의 성공은 훌륭한 벤치마킹 모델로도 자리잡을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 정서법’에 걸려 하나금융이 임직원 특별전형을 폐지하거나 지원금을 중단해야 하는 법적인 딜레마에 봉착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사립고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재단’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헌법정신으로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실행해야 하는 보편적 복지의 부족분을 기업과 부자들이 나서서 메울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그 중요한 법적인 근거가 재단 운영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악덕 기업주의 대명사 카네키. 철강왕 카네기는 2등과 3등을 용납하지 않아 ‘피도 눈물도 없는 경영자’라는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세계인이 존경하는 사회사업가로 명성을 얻었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미국의 성공한 기업가들은 모두 카네기와 록펠러로 부터 배운 기부문화를 실천하는 인물들이다. 그만큼 그들의 영향력은 컸다.

카네기가 사회사업가로 명성을 얻은 것은 그 당시 미국의 세법 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법인세율을 높이는 미국 정부의 정책때문에 대규모 세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기업가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것이 ‘재단에 대한 기부금 공제’였다.

준비가 덜 된 카네기는 ‘세금 내느니 차라리 좋은 일이나 하자’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모친의 뜻에 따라 전국 각지의 교회에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해줬다. 이후 재단은 하나 둘 체계를 잡아가면서 2500여개의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서민은행인 그라민뱅크에도 카네키 재단이 자금지원을 했을 정도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사회를 통해 벌어들인 부를 사회로 다시 환원하는 ‘경제 생태계’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공적부조 만큼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전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정서법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에 제약을 가한다면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고 진정성을 잃게 된다.

카네기가 정부의 뜻이 아닌 모친의 뜻에 따라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활동을 했듯이 ‘어떤 사회공헌 사업에 뛰어들 것인지’는 기업과 금융사들이 스스로 정해야 한다. 주주 뿐 아니라 기업의 주인 중 하나인 종업원들의 뜻과도 합치되는 사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금융이 임직원 특별전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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