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이번 사례는 처음입니다. 검증기관의 시험성적서가 조작됐다니...”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원전에 불량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밝혀진 28일 오후 한전 기자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원(한수원) 등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특히 원전관리를 총괄하는 한수원 관계자들은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진땀을 흘렸다. 한수원은 지난해에도 원전 부품 납품업체의 위조 부품 공급이 적발돼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번에 적발된 불량 부품은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자로의 냉각과 방사선 누출을 막는 안전설비에 동작신호를 전달하는 제어케이블이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핵연료 냉각, 방사성물질 차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곧바로 대형 원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이번에 적발된 1기당 30억원이나 되는 규모의 불량 부품은 2008년 처음 사용됐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도 이 부품을 그대로 쓰고 있다. 5년여가 흐른 뒤에야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원전 안전에 큰구멍이 뚫려 있음을 역력히 보여주는 큰 사건이다.
하지만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이 부분은 우리가 검수하지 않는다”며 “한국전력기술이라는 회사에 용역으로 일임하고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엄격하게 관리돼야 하는 품목을 외부용역으로 맡겼으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할텐데, 용역으로 일임한 건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억울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시험성적서 조작’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업계에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지난 10일에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4월26일 사건을 제보받고 5월2일 한수원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두 기관중 한 기관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모두 책임회피에만 신경쓰는 것처럼 보여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부와 한수원 등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지난해와 똑같았다. 일단 ‘이번 고비만 넘기고 보자’는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책임회피에만 급급해선 안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문제의 원인을 확실히 파악하고 재발방지에 나서야 한다. 일본 원전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가 한국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