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회기반시설(SOC) 건설과 운영에 적용되는 정부의 방재기준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확대에 대비하기에 턱없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미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국내 SOC 분야에 적용해 시뮬레이션 분석을 실행해 본 결과다. 감사원은 그제 이 같은 내용의 감사보고서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 실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도심지 침수, 댐 월류, 교량 붕괴, 항만 침수, 철도 레일 휘어짐 등 다양한 SOC 재난 위험이 정부의 현재 예측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예컨대 현재의 방재기준이 미래에도 유지된다면 경기 시흥시 도심지역의 침수 면적은 수십년 뒤 118만 500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기존 정부 예측 43만 9000㎡의 2.7배에 이른다. 이에 따른 피해액은 정부 예측 2500억여원의 2.8배인 7200억여원에 달할 전망이다.
댐 월류 추정은 4가지 IPCC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소양강댐 등 14개 댐에 적용해 각각의 미래 최고 수위를 예상해 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총 56개 가운데 2040년 이내에 27개, 2070년 이내에 31개에 월류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마산항, 평택·당진항, 고흥 녹동신항, 부산 마린시티 등의 침수 위험도 정부 예측보다 훨씬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여름철 고온으로 철도 레일이 휘어지는 데 따른 열차 탈선 등의 위험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위험이 이처럼 커지는 데도 정부의 SOC 정책은 과거의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립·시행되는 탓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감사원은 “정부가 기후위험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없거나 부족한 채로 주요 SOC의 설계기준 등을 수립·추진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행정안전부 등에 SOC 정책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이번 감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 기후위험을 고려한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방재기준을 기후변화에 걸맞은 수준으로 높이고 SOC 투자를 늘려야 한다. SOC는 건설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