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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박사의 쉽터] 젖 떼기 전에 맛보아야 할 ‘전능감’

이순용 기자I 2023.07.31 06:19:51

김미선 상담학 박사

[김미선 상담학 박사] 소아과 의사이자 아동 심리분석가인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는 정상적인 아이는 ‘자폐-공생-분리개별화’의 발달단계를 거치며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번 칼럼(자폐 단계: 자신의 욕구만 인식하는 절대적인 자기도취의 단계)에 이어 이번에는 두 번째 발달단계인 ‘공생단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공생단계(symbiosis)는 약 2개월에서 6개월까지 일차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대상과 일체감 또는 공생감을 경험하는 단계로서, 타인과 구분되지 않은 자아의 발달단계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아기는 엄마와의 애착을 통해 자신과 엄마가 하나인 것 같은 환상을 지닌다. 비로소 엄마를 바라보고 웃기도 하지만 완전한 분화가 아닌, 엄마를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고 자아 형성을 도와주는 ‘자기 대상(self object)’으로 인식한다.

김미선 상담학 박사
이 시기는 자신과 타인을 구별할 수 없는 단계로서 아기는 엄마가 나이고 내가 엄마라고 여긴다. 엄마가 웃으면 아기도 웃고 엄마가 찡그리면 아기도 같이 찡그린다. 즉 엄마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엄마가 슬프면 나도 슬퍼하며 감정을 공유한다. 이러한 공생단계에서 충분히 돌봄 받지 못하면, 좋음(good: 쾌에 의한 형상)과 나쁨(bad: 불쾌에 의한 형상)의 세계를 경험하되, 이러한 자극의 근원이 자기로부터인지, 아니면 타인으로부터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 마음에 간직된다.

이 과정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면 사진기로 사물을 찍듯이 아기는 자신의 눈(렌즈)에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의 형상을 찍는다. ‘찰칵찰칵’ 나를 보고 방긋 웃어 주던 혹은 나에게 짜증을 내던 엄마, 아빠의 행동과 표정 등 무수히 찍힌 여러 컷의 사진들이 아기의 마음속에 들어와 형상(image)으로 존재한다. 그 사진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마음속 앨범’을 펼쳐봤을 때 자신을 보고 반기며 행복해하는 표정의 사진이 많으면 아기는 자신을 ‘사랑받는 존재’로 여기며 건강하게 자란다. 하지만 짜증 내고 귀찮아하는 표정의 사진들로 가득 찼다면 아기는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엄마의 산후 우울증이 오래 지속되면 아기에게도 우울함이 전염될 수 있다. 특히 공생 기간, 엄마의 우울은 유아의 분열증으로 발전될 수 있기에 반드시 우울증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체로 엄마와의 공생 경험이 만족스러우면 아기는 ‘전능감(omnipotence)’을 느낀다. 배가 고프다고 느꼈는데 어느새 따뜻한 젖이 내 입에 물려있고, 기저귀가 끈끈해서 불편했는데 부드러운 손길이 자기 엉덩이를 씻겨주고 뽀송뽀송한 분까지 발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어라,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다 이루어지네!’ 이러한 마술과 같은 경험이 쌓이면서 아기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전능감’을 맛보지 못한다면 성장하면서 채워지지 않은 욕구에 대한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에 시달린다. 자신보다 나은 대상에게 쉽게 시기심과 질투를 느낀다. ‘젖을 떼다(weaned)’라는 단어는 ‘아낌없는 대우를 받았음’의 히브리 뜻을 지닌다. 젖을 떼기 전 아낌없는 돌봄을 받아 ‘전능감’을 누리며 진정한 ‘신(god)’이 되어 본 사람만이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품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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