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산업현장 고도화, 노동자 역량 강화 나서야

송길호 기자I 2022.05.02 06:15:00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이 지금 칠판에서 보고 있는 전기차의 가격이 3600만 원입니다. 이 차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 중 가장 가격 비중이 큰 것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전기차이므로 당연히 배터리가 1200만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다음으로는 차량용 소프트웨어 1000만 원, 센서 500만 원 등 의외의 순서를 알게 되면 자동차는 기계공학이라는 전통 관념은 이내 사라진다.

2018년 정부가 내놓은 ‘미래형 자동차 인력 현황 및 전망’을 보면 2018년 미래차 종사 기술인력은 2015년 대비 5.3배 증가한 5만533명으로 연평균 74.7%의 증가율을 보인다. 이를 직무 측면으로 보면 연구개발 인력은 2015년 대비 8.1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학력별 부족 인원이다. 전체 부족률에서 대졸 이상이 78%에 달하는 등 미래기술의 고학력 수요 추세는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러한 위기는 국내 완성차 업체 노동조합의 반발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2021년 임금단체협상’ 첫 상견례를 앞둔 그해 5월, 그룹이 발표한 74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를 반대하며 “국내공장 투자 확약 없는 일방적인 해외투자는 노사 갈등만 야기할 뿐”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가 2019년 내놓은 ‘미래형 자동차 발전 동향과 노조의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신차 생산물량 중 전기차 비중이 2025년 15%, 2030년 25%로 늘어나면 현대차에서만 각각 ,629명, 2837명의 인력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기차의 경우 차량을 구성하는 부품 수가 37% 수준으로 줄어들고, 부품이 스마트화되면서 이업종간의 협업을 통한 연구개발, 제조가 활발해지며 예전의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술 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정규 직업 교육을 받은 역량만으로는 신기술 및 횡단기술에 대응할 확률이 높지 않고, 따라서 과거에는 직업학교 출신이 일찍 취업하는 데는 유리했지만, 노동시장에서 조기에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에릭 하누섹(Eric Hanushek)과 독일 교수들의 공동 연구 ‘생애 주기에 걸친 일반교육, 직업교육과 노동시장 결과(GeneraI Education, Vocational Education, and Labor-Market Outcomes over the Life-Cycle)’에서 보듯 조기에 직업 교육을 마치고 취업을 하는 것은 청년 실업 극복에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조기 퇴직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등 단계부터 시작하는 이원화된 직업교육시스템(Dual System)으로 잘 알려진 독일이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낮은 청년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최근 들어 대학 진학률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는 것과도 일치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시장의 불평등 또는 사회 계층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제도 중 하나는 교육과 직업훈련제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의 신기술 직업훈련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놀라울 정도로 낮은 것도 현실이다. 이는 유럽의 여러 국가 사례와는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독일 노동조합은 직업교육훈련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글로벌 최고의 훈련 및 자격제도를 만들었다. 테크니션, 마이스터, 고급 엔지니어로 계층 상승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듦은 물론 미래의 노동 계층이 정부의 공적 투자를 통해 질 높은 직업교육을 안정적으로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향후 대학교육 등 끊임없는 성장경로를 통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자 공동 협력을 해 왔다.

이제는 한국의 노동조합도 노사정이 협력하여 노동자의 역량향상, 생애 경력설계, 미래 자녀 세대의 고용기회 확대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정신이다. 몇몇 산별 노조에서부터 선도 모델을 제시하여, 산업화 시대의 노조 관행과 인식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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