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앞둔 처연한 공사장...캔버스에 옮긴 도시의 두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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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비 기자I 2021.08.09 05:30:00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구지윤 개인전 ''혀와 손톱''
거친 선과 부드러운 선 섞고 색감 대비
에너지 넘치는 듯 침체된 추상회화 표현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사람은 태어나고 언젠가는 죽는다. 마찬가지로 도시와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고 사라진다. 언젠가 새로웠던 건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바라게 된다. 현대 도시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온 구지윤(39) 작가는 이런 건물의 모습이 유난히 처연하게 느껴졌다. 서울과 근교의 오래된 동네를 다닌 구 작가는 30년 전만 해도 번쩍거리며 어깨를 당당히 폈던 아파트가 재개발을 앞둔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을 목격했다.

재개발 현수막 뒤로 보인 아파트의 모습은 마치 어깨가 굽은 할머니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건물들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엔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위한 공사현장만 남아 있기도 했다. 끊임없는 파괴와 생성의 힘으로 유지되는 도시의 잔혹한 순리 속에서 언젠가는 기억으로만 남고 사라질 건물들의 운명을 구 작가는 캔버스에 담았다.

구지윤 작가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혀와 손톱’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은 지난 3일부터 구지윤 작가 개인전 ‘혀와 손톱’을 개최했다. 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기존의 시선에 시간을 더한 신작 18점을 선보인다.

구 작가가 도시와 도시 속 공사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한 건 대학원생 시절부터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닌 구 작가는 그곳에서 크고 작은 공사 현장을 보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특히 월스트리트에 과거 테러로 무너진 공사 현장을 목격했을 때를 떠올리며 그는 “분명 비극적 장소인데 한편에서는 그곳을 관광지로 만들어 희생자 가족이 관광객을 데리고 다니면서 상황 설명하고, 관광을 마치고 나면 기념품을 파는 모순되고 이상한 상황이 힘들었다”며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과잉된 에너지를 느꼈고 그것을 시각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업에는 여기에 도시가 갖고 있는 시간적 속성에 대한 사유가 더해졌다.

전시 제목 ‘혀와 손톱’은 이번 전시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작가는 “속성이 완전히 다른 혀와 손톱은 도시에 대한 상반된 속성을 함축한다”고 설명했다. 손톱은 끊임없이 자라나지만 지속적으로 새 손톱을 위해 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는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결국엔 부서져 나갈 수밖에 없는 도시 속 건물들과 닮아있다. 반면 혀는 부드럽고 미끌대며 몸 안에서도 항상 제자리에 머무른다. 이런 혀의 모습은 도시 속에 숨어있는 욕망을 상징한다.

‘혀와 손톱’ 외에도 이번 작가의 작품 제목은 ‘마술연필’, ‘잔과 잔디’(glass aand grass) 등 다소 구체적이지만 캔버스에는 이들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도시와 공사 현장의 풍경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느낀 작가의 감정이 색채와 선 등의 조형 요소들이 뒤엉킨 추상회화로 캔버스 위에 표현됐다. 날카롭고 거친 선과 부드러운 선이 섞인 붓질, 공사 현장의 천막을 연상케 하는 탁한 청록색과 강렬한 네온사인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색감의 대비는 작가의 상반된 감정을 두드러지게 느끼게 한다. 작가는 “추상화지만 관람객과 소통하는 지점을 만들기 위해 작품을 그릴 당시 떠올랐던 생각과 단어들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구지윤 ‘혀와 손톱’(Tongue and Nail·2021), 리넨에 오일, 290.9 x 218.2cm(사진=아라리오 갤러리)
구지윤 ‘마법 연필’(Magic Pencil·2020), 캔버스에 오일, 193.9 x 130.3cm(사진=아라리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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