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육군 등에 따르면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문에 들어온 뒤 6.25 전쟁 때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 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당시 나이 33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옛날에는 임금만이 대장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화국이라서 신하도 대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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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2월 참모총장 재임 당시엔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직접 브리핑해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미 8군사령부는 전쟁 당시 업적을 기려 2013년 고인을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군 내 남로당 숙청 분위기 속에서 박 전 대통령 구명에 적극 나섰고, 그 인연으로 1960년 대장 전역 뒤 교통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지휘했다.
좋아하는 고사성어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인데 이는 ‘기동력 있게, 겸손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백 장군은 설명한 바 있다. 6·25전쟁 당시 겪은 일화 등은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에 육성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 복무 사실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0년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명예 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불발됐다.
고인은 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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