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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두딘 기자(상트페테르부르크베도모스티)] 서울시향이 모스크바, 예카테린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을 포함한 최초 러시아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 볼쇼이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었다.
서울시향의 러시아 방문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서울시향은 짧은 기간 동안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교향악단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러시아 청중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 시향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교향악단이지만 그 역사는 74년에 불과해 빈 필하모닉, 뮌헨 필하모닉, 암스테르담 필하모닉,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등과 비교하면 아직 젊은 필하모니에 속한다.
서울시향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해군 필하모니라는 이름으로 한 때 존재해야 했었고, 1957년에 와서야 서울 시향으로 재창단되면서 국립 필하모니의 위상을 부여받았다. 1988년에는 서울 하계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했다.
2005년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인 정명훈을 상임지휘자 및 예술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서울시향은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명훈이 상임지휘자로 일하던 기간 동안 서울시향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라벨, 드뷔시, 차이콥스키, 베토벤의 작품들과 말러 교향곡 등을 10여개의 앨범을 녹음했다.
서울시향의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음질과 기술적 특징은 2010년 ‘백야 스타’ 축제에 참가해 마린스키 극장 콘서트홀에서 가진 러시아 최초 공연에서 평가할 수 있었다. 당시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서울 시향과 기적같은 호흡을 선보였다. 내년 2월에 정명훈의 뒤를 이어 오스모 벤스케가 상임지휘자로 부임한다.
이번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 볼쇼이홀 공연에는 2017년부터 서울시향의 수석객원지휘자가 된 독일 출신의 마에스트로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했다. 이번에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공연장소인 볼쇼이 홀의 역사적 명성에 걸맞게 화려함과 광휘를 상징하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묘사한 제5번 교향곡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원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작곡했다가 나중에 그가 독재자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면서 그 이름을 지워버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서울시향의 선호 스타일과 연주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레퍼토리인 셈이다. 한국의 예술은 현재 활짝 피어나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영화사업과 오페라 예술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가하는 한국 성악가들은 러시아 성악가들의 주 경쟁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상을 받은 김기훈은 이후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도 2등을 차지했다.
한국인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불같은 열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한국인들은 풍부한 유럽적인 경험을 잘 습득하고 섬세하게 재연할 뿐 아니라 전통적인 스타일에 자신들의 분명한 개별적 윤곽을 부여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협주곡에서는 20세기 후반의 위대한 오케스트라들에 필적하는 대형 교향악단의 힘이 분명히 느껴졌다.
선명한 템포와 역동적 대조, 수직적인 활긋기의 탄력적인 밀도, 영혼을 꿰뚫는 것 같은 현악기의 서정성과 풍부함이 청중으로 하여금 예전의 오래된 지휘풍을 연상시키면서도 예리한 현대 감각을 더했음을 알게 해주었다.
젊은 피아니스트인 임동혁은 쏟아지는 화음을 기세 좋게 뛰어넘으면서 기교를 과시해 피아노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도록 연주했다. 앙코르 곡으로는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을 연주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은 춤을 추는 듯한 음악의 날아다님을 관중들이 느끼게 하면서도, 2악장의 다단조 장송행진곡의 음조를 살려내고 현기증이 날 듯한 스케르초와 민중이 환희를 묘사한 마지막을 힘주어 공연했다.
마르쿠스 슈텐츠는 섬세하고 청년 같은 에너지로 그의 작은 손짓에도 즉각 응답하는 오케스트라와의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줬다. 관중의 앙코르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아서 약간 부족하고 아쉬운 느낌이 들게 함으로써 다음에도 이 오케스트라가 반드시 다시 이 곳을 방문할 것이라는 인상을 남겨둔 수완도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