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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부동산신탁은 회사 설립 21년 만에 교보생명이 단독 지배하는 회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번 지분 거래로 교보생명은 수익성 높은 ‘알짜 자회사’를 직접 경영하고, 삼성생명도 중복 자회사를 정리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보생명, 삼성생명 생보신탁 지분 50% 매입키로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생보부동산신탁 지분 50%(50만 주)를 교보생명에 팔기로 했다. 매각 가격은 약 1100억원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양쪽이 협의를 끝냈고 각 회사의 이사회 의결 등 내부 의사 결정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생보부동산신탁은 교보생명과 삼성생명이 각각 지분 50%를 보유하고 공동으로 경영하는 부동산 신탁회사다. 1998년 교보와 삼성, 흥국생명이 자본금을 출자해 회사를 세운 후 흥국생명이 보유 지분(10%)을 처분한 2001년부터 교보·삼성 공동 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지분 거래가 급물살을 탄 것은 규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이전부터 생보부동산신탁 지분 매각을 추진해 왔다. 부동산 자산 운용사인 삼성SRA자산운용을 이미 100% 자회사로 갖고 있고, 그룹 차원에서도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본업에 집중하기 위한 사업 구조 개편을 추진해서다.
하지만 정작 공동 경영자인 교보생명은 선뜻 인수자로 나서지 못했다. 자살 보험금 미지급 문제로 지난 2017년 5월 금융당국으로부터 한 달 영업 일부 정지라는 징계를 받은 탓이다. 현행 규정상 업무 정지나 시정 명령 이상의 제재를 받은 금융회사는 제재일로부터 3년간 다른 금융회사의 최대 주주가 될 수 없다. 은행·보험·신탁사 같은 금융사를 신규로 인수·합병(M&A)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삼성생명도 지난해 초 규제에 발목 잡힌 교보생명을 제치고 신한금융지주, 현대산업개발 등을 상대로 생보신탁 지분 매각을 타진했으나 거래가 성사되진 못했다. 생보신탁 경영권을 온전히 확보하려면 삼성의 지분 외에 교보생명이 가진 주식을 단 1주라도 넘겨받아야 하지만 교보 측이 지분 매각을 거절해서다.
◇규제 불확실성 사라지자 지분 매입 착수…시너지 기대
교보생명이 뒤늦게 생보부동산신탁 지분 인수에 나선 것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지분 50%를 이미 보유한 자회사의 주식을 추가로 매입하는 것이 최대 주주(보유 지분이 가장 많은 주주)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사 M&A 규제가 풀리는 내년 5월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통상 한 회사의 최대 주주는 여러 명이 될 수 있다”며 “과거 영업 정지를 당한 금융회사라도 현재 지분 50%를 가진 공동 최대 주주로서 지배 중인 자회사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은 최대 주주가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당국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생보신탁 지분 추가 인수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도 교보 이외에 적당한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지분 매각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생보부동산신탁은 국내 부동산 신탁사 11개 중 매출 기준 업계 8위인 중하위권 회사다. 부동산 신탁사는 토지주가 맡긴 땅을 개발 또는 관리하며 받는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이다. 다른 신탁사가 직접 사업비를 대고 부동산 개발에 참여하는 고위험 차입형 신탁 사업을 벌이며 회사 덩치를 키우는 동안 생보신탁은 모회사의 영향을 받은 보수적인 영업으로 사업 확장이 다소 더딘 편이었다.
그러나 수익성이 높은 알짜배기라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 생보신탁의 지난해 순이익은 282억원으로 3년 전인 2015년(122억원)보다 2배 넘게 늘었다.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대표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작년 기준 27%로 업계 4위다. 현재 보유 중인 현금과 예치금만도 864억원에 이른다. 최근의 부동산 경기 둔화, 금융당국의 부동산 신탁사 3개 추가 인가에 따른 경쟁 심화 등에도 당분간 이 같은 순익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교보생명이 그동안 생보신탁을 공동 경영하며 충분히 경영 노하우를 쌓은 데다 회사 수익성이 좋기 때문에 지분 인수에 이점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모회사와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