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全기업 상장폐지 1년 유예 사실상 불가능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전날 열린 정례회의에서 한국거래소의 상장관리제도 개선 안건을 의결했다. 조만간 열리는 금융위 정례회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12일 ‘기업의 외부감사 부담 완화를 위한 간담회’를 열고 외부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한 상장법인 재감사와 관련해 상장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가 상장제도 개선에 착수한 이유는 감사인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추세 속 지난해 비적정을 받은 코스닥 상장사 15곳의 무더기 퇴출 사태가 발생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차례만 감사의견 적정을 받지 못해도 상장폐지 대상에 오르게 되면서 기업과 주주들의 반발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감사의견 비적정 기업은 2014년 14곳에서 2017년 25곳으로 크게 증가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이전에 큰 무리 없이 넘어가던 사안이 후임 지정 감사인에 의해 문제될 소지가 있어 미리 불확실성 요소를 털어내려는 것”이라며 “올해 감사의견 비적정은 훨씬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당초 개선안은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아도 다음해 감사보고서에서 적정 의견을 받으면 상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증선위에서 제시된 개선 방향은 단순 상장폐지를 1년간 유예하는 것이 아닌 조건부 적용이 원칙인 것으로 전해졌다. 증선위에 참석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적정 기업 중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가려내기 위해 상장폐지 시 일정 조건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세부 조건은 금융위에서 최종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불공정세력 상장 유지 시 시장 혼란 우려
상장폐지 유예에 조건부를 적용한 것은 실제 자금 거래가 불투명하거나 지속 경영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기업들을 솎아내기 위해서다.
현재 금융당국은 무자본 M&A 세력을 집중 감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특히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기업들 중에는 분식회계나 불공정거래가 의심되는 곳들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기업의 주식을 산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지만 상장을 유지한다면 더 큰 혼란을 낳을 수 있는 만큼 부실기업은 검증을 통해 즉시 퇴출하는 장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회계법인들이 감사의견 적정을 주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상장제도 개선안에는) 무자본 M&A 세력을 퇴출하면서도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담길 것”이라고 전했다.
상장폐지 유예에서 제외될 기업들은 자본금이 아주 적거나(1억원 이하 등) 최근 일정기간 내 최대주주 또는 대표이사가 자주 바뀐 곳들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주주가 무리하게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기업들도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의도가 다분해 상장이 유지되면 시장 질서를 흐릴 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번만 감사의견 적정을 받지 못해도 상장폐지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전례도 있다. 거래소는 2003년 상장폐지 요건을 ‘2년 연속 감사의견 비적정’에서 ‘최근 사업연도 비적정’으로 강화한 바 있다. 이에 상장폐지 대상 기업들이 소송을 걸었는데 대법원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는 상장법인 재무건전성을 평가할 유일한 자료로 감사의견 비적정은 투자자 신뢰를 해칠 가능성이 명백하다’며 거래소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미 대법원의 판결이 난 상황이어서 모든 비적정 기업의 상장폐지 1년 유예라는 방안은 명분이 부족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