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은 냉전시대에서 평화시대로의 역사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한반도 질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의 채택으로 사문화된 ‘모든 선언들과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복원했다.
지난 시기 북한과 만든 비핵화 합의들과 남북 합의들이 모두 이행되지 못한 경험에 비춰 볼 때 이번 합의도 같은 운명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두발언에서 지난 시기 합의 불이행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구속력 있는 불가역적인 합의를 만들자고 한 것을 볼 때 합의이행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북핵문제 등으로 켜켜이 쌓인 대립갈등의 에너지가 폭발할지도 모를 임계점에서 대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에 실패하게 되면 군사적 수단의 사용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합의 불이행의 상당부분 책임이 북측에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와 이전 정부가 만든 합의를 다음 정부가 이행하지 않은 것도 합의 불이행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다행이도 이번에는 남과 북의 정권임기 초반이고, 북한이 비핵화가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발전노선을 채택했기 때문에 합의의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 사이의 직통전화 설치에 이어 개성 지역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와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합의는 남북관계를 제도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간헐적으로 이벤트성으로 이뤄졌던 남북대화와 이산가족상봉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남북관계의 개선·발전을 위해서는 상시적인 의사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락사무소 개설합의는 남북교류협력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김정은 위원장 입을 통해서 확인하고 명문화한 것이었다. 판문점선언문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 비핵화 목표만 밝히고 구체적 비핵화 방법과 일정을 약속받지 못했다는 일부 우려가 있지만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큰 틀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한 꾸러미에 들어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 등과 관련한 말 대 말의 공약을 하고, 이어지는 북미정상회담에서 행동 대 행동으로 일괄타결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이 전제조건 없이 ‘완전한 비핵화’를 확약한 것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다름없다.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3차 전원회의에서 ‘핵이 없는 세계’와 ‘핵군축’ 차원에서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하였다고 주장할 때만 해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반신반의했다. 이번에 전제조건 없이 ‘핵이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고 공약함으로써 북미회담에서 일괄타결하고 단계별로 이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비핵화 협상은 과거 동결 대 보상 방식인 안보-경제 교환이 아니라, 미국의 우려사항인 비핵화와 북한의 요구사항인 체제안전보장을 안보-안보 교환방식으로 일괄타결하고 단계별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핵보유 동기를 해소해야 한다. 북한은 북·미 적대관계에서 핵개발의 동기 찾아왔다. 이번 합의에서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3자 또는 4자회담을 추진키로 한 것은 비핵화 수순에 상응하는 체제안전보장 조치를 마련하는 동시행동 조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판문점선언이 이행된다면 정전협정에 기초한 소모적인 분단체제를 청산하고 평화번영의 새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면 지정학적 리스크는 낮아지고 대외 신인도는 올라가게 될 것이다. 이번 합의를 이행하게 되면 우리는 정전체제에서의 피곤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풍요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