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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조선업 구조조정 미룰 수 없다

칼럼니스트 기자I 2018.01.16 05:00:00
[하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신년 벽두부터 대통령께서 경영난에 처한 조선소를 직접 방문해 “이 힘든 시기만 잘 이겨낸다면 다시 조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격려했다. 국정 운영의 최고책임자로 많은 고민의 과정에서 나온 결정일 것이다. 위기에 처한 조선산업 종사자에게도 용기와 희망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혹시라도 대통령의 선의가 구조조정을 또다시 지연시키거나 속도를 조절하자는 신호로 오해돼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다.

먼저 과연 지금 시점에서 정부가 특정 산업이나 개별 기업의 지원에 앞장서야 하는지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지원을 받을 만한 성실한 자구노력을 기울였는지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은 계속기업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기업은 새로운 자본구조 하에 새 출발(fresh start)이 가능해야 하고 생존가능성이 없다면 효율적으로 정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부실이 심화된 기업들의 실패 과정을 복기하고 책임 분담을 위한 기본적인 실태조사와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STX조선, 성동조선을 비롯한 다수의 기업에 국책은행 및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수많은 자금이 투입되었지만 어떻게 사용되었고 무슨 성과를 가져왔는지, 현 비용구조로 다음 호황기까지 견딜 수 있는 여력은 있는지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된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둘째, 구조조정은 남이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제 아무리 용한 의사도 아프다고 찾아오기 전에는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좋은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회복가능성이 높은 초기에 찾아가야 하는 법이다. 자율협약, 워크아웃 등 온갖 연명수단을 다 거치며 만신창이가 된 채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를 어느 명의가 살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한시법으로 계속 편법적 운영을 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통합도산법에 통합하고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회생법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총수 독단, 관치 금융, 부실 공시, 분식 회계 등의 낡은 관행과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시는 구조조정을 요구받는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구조조정은 열심히 일했던 사람을 자르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잘못된 판단으로 조직 전체에 피해를 입힌 의사결정을 검토해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인건비 아껴 생길 경쟁력으로 어떻게 산업구조 전환과 기술혁신에 대비할 수 있으며, 이후에 상황이 또 나빠지면 다시 해고를 반복하며 위기를 모면할 것인가?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노조도 책임지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실적이 좋았을 때 노동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했는지부터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시키는 대로 머슴처럼 일한 사람들에게 왜 난파 시점에 와서는 갑자기 주인 대접을 받으라는 것인가.

뻔한 위험에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 대책 없는 용기까지 대다수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지원하는 식으로는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실패의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 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세금을 걷고 행정권한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경영판단으로 직장을 잃고 생계가 곤란하게 될 사람들을 보호할 튼튼하고 촘촘한 안전망(safety net)을 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새 정부 출범 후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숨 가쁘게 달려왔고, 대통령 말씀대로 적폐청산은 1-2년 내에 끝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에 한정하더라도 문제가 곪을 때까지 눈치만 보고 있다가 2016년 총선 이후 떠밀리다시피 10여 차례의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회의로 흐지부지된 전 정권의 방식을 되풀이하는 식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혁신성장을 이루겠다는 정책 목표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성공을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도 구조조정에 실기한다면 정권의 황혼녘에 들이닥칠 청구서에 붙게 될 과도한 연체이자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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