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 빛바랜 자살보도윤리

김보영 기자I 2017.12.21 06:00:00

''자살보도 권고기준'' 10여년, 스포츠 중계식 보도 행태 여전
자살 보도가 공중에 미칠 영향 고민, 자성해야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지난 2005년 2월, 20대 여배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배우 000씨 자살’이란 제목으로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는 연일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동식 옷걸이에 넥타이로 목을 매’ 등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그가 출연한 작품 제목을 따 ‘000씨, 00처럼 날아가’ 등 죽음을 미화한 듯한 제목까지 등장했다.

지난 18일 또 한 명의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우리 곁을 떠났다. 10여년이 흘렀지만 그의 죽음을 소비하는 언론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었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인기 아이돌인 만큼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해 유서 내용 보도를 최소화 해달라”며 각 언론사에 자제를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갈탄을 프라이팬에 피워 놓고 자살 시도’ ‘유서 내용 전문 공개’ 등 그의 죽음과 관련한 수많은 정보들이 스포츠 중계처럼 실시간 보도됐다. 센터 관계자는 “사람의 죽음을 신중히 보도해야 한다는 윤리를 저버린 기사들이 많다”며 “그의 죽음이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톤다운’(tone down) 없이 내보내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유감스럽다”고 했다.

유명 연예인의 사망소식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팬이었던 자녀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충격에 수업도 안 들어오고 가출한 친구들이 많다’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2004년 자살예방협회와 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자살이 언론의 정당한 보도 대상임은 맞지만, 언론은 자살 보도가 청소년을 비롯한 공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충분한 예민성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유명인의 자살 사건 자체를 보도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죽음에 어떤 사회적 위험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사안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다.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보도하는지 등 우리 사회는 매번 질문을 되풀이 하지만, 그간 언론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답변해 왔는지 자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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