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원 칼럼] 높은 지지율 어떻게 활용하나

이익원 기자I 2017.06.16 06:00:00

논의과정 없이 정책강행
정권초 조급증 우려 키워
노동개혁에 정치자산 집중
국가시스템강화 초석 놓길

[이데일리 이익원 총괄에디터]

세상만사 일을 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바둑도 그렇고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권 초반 지지율이 높을 때, 정치적 자산이 탄탄할 때 무엇부터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국가 경영기법의 열쇠다. 국가 명운을 좌우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를 최상단에 놨다. 각종 경제정책은 철저히 소득주도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가 실업자를 구제해주고 인위적으로라도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증대하면 경제가 선순환할 것으로 믿고 있다. 국회에 달려가 추가경정예산의 절박성을 호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주위 사람들도 기민하게 박자를 맞추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막무가내식으로 통신비 인하를 밀어붙였다. 성이 차지 않으면 해당부처를 질책하며 업무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전후사정, 법적 근거를 언론에서 따지면 한발 물러서는 듯 하지만 내밀한 분풀이는 반복된다.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4차산업 육성 전략보다 통신비를 어떻게 낮출지가 더 중요한 과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등도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

카드수수료 인하방안도 전광석화처럼 마련됐다. 수수료를 낮춘지 2년도 되지 않았다는 카드업계의 목소리에는 오불관언이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부채 탕감방안도 마련중이다. 보험업계는 벌써부터 금융위원장이 새로 취임하면 보험료 인하압박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전방위적인 정책 추동력은 80%를 웃도는 대통령 지지율에서 나온다. 옥탄가가 높으면 엔진은 힘차게 돌기 마련이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에너지도 거기에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지리멸렬한 보수 야당을 보면 거침이 없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하지만 논의과정이 치밀하지 못한 설익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권 초반 조급증이 정책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다. 정부의 시혜적 조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민간의 역할을 공공이 대체하면 으레 시장 위축을 불러온 사실도 여러차례 확인했다.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분배중심적인 개념을 바닥에 깔고 있다. 분배가 압도하는 나라에서도 새로운 신사업을 만들지 못한다. 4차산업 혁명시대 낙오자로 전락하게 된다.

데가지즘(구체제 청산)을 통해 프랑스 선거혁명을 이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정권초 정치적 자산을 노동개혁에 쏟고 있다. 마크롱 정부가 제시한 노동개혁방안에는 초과근로수당 감축과 공공부문 일자리 감축 등을 비롯해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구체적인 입법 일정까지 제시하고 노동단체를 설득중이다.

지지율이 높으면 대중의 자발적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절차의 정당성을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다. 입법과정에서 진통이 따르지만 두고두고 국가의 체질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법을 만드는데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하는 이유다.

아쉽게도 문 대통령은 갈등적인 문제보다는 공감을 확산할 수 있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둔 듯한 느낌이 든다. 부의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분배정책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에서 분배는 보완재다.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시장은 생물이다. 지지율 높은 정부가 분배만을 집착하면 기업들은 지레 겁부터 먹는다. 복지강화와 분배는 5년 내내 추진해야 할 과제다.

민심을 업고 있을 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어젠다에 주력해야 한다. 민심은 변덕이 심하다. 언제 연기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해묵은 정책과제인 노동개혁과 교육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진짜 이유다. 그것이 국가시스템 강화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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