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193년전인 1823년 12월 2일로 돌아가 보자. 미국 제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는 미국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미국 외교정책의 원칙을 담은 ‘먼로 독트린’을 선언했다. 먼로는 미국이 유럽 외교정책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아메리카 전체를 식민지를 만들거나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1776년 7월 4일 영국의 질곡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한 미국으로서는 독립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게 시대적 사명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 열강에 밀리는 미국으로서는 남미 등 미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유럽세력을 견제해야 하는 힘겨운 과제마저 떠안았다. 미국은 유럽에 맞서 ‘비(非)동맹ㆍ비식민ㆍ불간섭’을 골자로 하는 ‘고립주의’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았나. 미국이 유럽 열강에게 휘둘렸던 옛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섰지만 또다시 세계와의 단절을 열망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세계무대에서 밀리자 이들을 돕기 위해 해외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보호무역정책을 펼칠 태세다.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일자리를 없앴다며 통상정책을 전부 뜯어고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보편타당한 세계관과 경제논리를 갖춘 인물로 알려진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마저 기존 무역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대선공약을 확정했다. 보호무역주의의 거대한 먹구름이 시나브로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 석학 폴 케네디는 저서 ‘21세기 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자유주의가 시장 메커니즘과 개방정책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특정 국가의 이기적 행태로 자유주의 질서가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외치며 세계화를 이끌어온 국가가 미국이다. 특히 공화당은 자유시장의 최대 옹호자다. 미국은 교역국이 자유무역에 따른 시장개방에 미온적일 때 ‘슈퍼 301조’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휘두르며 일방적인 보복조치를 취해왔다. 그런 미국이 이제는 ‘FTA는 재앙’ 운운하며 자유무역을 폄훼하는 모습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성을 보인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한번 솔직해 보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방향착오라고 말이다.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미국 공화당 선거공약이 효험을 발휘하려면 자유무역 확대가 정답이다.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에서 자유무역에 토대를 둔 국제교역만이 교역에서 재미를 보는 국가는 물론 조금 손해보는 국가에게도 결국 혜택을 준다고 설파하지 않았는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와 미국의 신(新)고립주의는 자국 이기주의의 구차한 명분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거짓순수’(pseudoinnocence)에 불과하다. 두 나라의 논리는 모든 이의 공감을 사기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됐다는 얘기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이 경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국경을 닫어걸고 보호무역주의 깃발을 내걸은 모습은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가는 퇴행적 행태다.
오는 11월에 미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보호무역주의 바람은 거세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로서는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해 능동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또한 수출 못지 않게 내수 산업 개발에도 주력해야 한다. 관광, 서비스 등 내수산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해 결국 수출과 내수가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