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호의 벤처캐피털 세계]③합법적 한탕주의자

박철근 기자I 2015.10.02 03:00:00
[유석호 페녹스벤처캐피털코리아 대표]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음식을 남기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배웠다. 필자도 어렸을 적 밥을 남기는 모습을 보고 조부께서 호통을 치셨던 기억이 난다. 비만을 질병이라고 보는 요즘 시대에는 먹을 것을 남기지 말라는 그때의 말씀은 구시대적으로 들린다.

졸업 후 좋은 직업을 가지면 평생을 보장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한 회사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해서 계속 승진하다 임원으로 은퇴하고 퇴직금으로 남은 생을 살거나 의사 또는 법관이 되서 풍족한 수입과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꿈이자 목표였다.

이런 시절에 나쁘게 머리를 써서 짧은 기간에 큰 돈을 벌려는 사람들을 지칭해서 ‘한탕주의자’ 라고 불렀다. 범죄자로 취급 받는 이들은 장기간의 근면성실함을 중시하던 시대에 사회적으로 큰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평생직장이란 말도 사라지고 의사나 변호사들도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폐업률이 매년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나 곧 100세 시대가 올 것이라고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 걱정 보다는 당장 먹고 살 거리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시대의 모범답안은 ‘한탕주의’다. 한번에 큰 돈을 벌어 평생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그 다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생을 즐겁고 보람있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 단 한탕주의는 합법적이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혁신적이어야 한다. 이런 합법적이고 혁신적인 한탕주의를 우린 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길을 걷는 이들의 성공모델은 3~5년 열심히 일해서 수백억원에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합법적 한탕이 아닌 ‘두탕’, ‘세탕’을 치는 연쇄창업가(SE)가 되거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합법적 한탕주의자들을 돕고 양성하는 일을 하게 되면 고용창출은 물론 벤처 생태계에 훌륭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

이런 합법적인 한탕주의적 기술 또는 서비스를 인수한 중견기업은 자금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으로 가지고 가서 혁신적인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 최고의 산물이 아닐까?

이제 한탕주의를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합법적으로 일해서 단기간에 큰 돈을 버는 이런 자본주의적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자원 부족한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들이 구축되기 때문이다.

요즘 스타트업들이 입고 다니는 티셔츠에 ‘스타트업을 하는 불효자식입니다’ 라는 문구를 보았다. 얼마나 부모들이 스타트업 하는 자식을 반대했으면 이런 글귀까지 나왔을까.

아직 부모 세대들은 자녀들이 좋은 직장 들어가서 평생 안정된 직업을 얻는 것이 최고의 결정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들의 부모들에게 그렇게 배웠고 또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혁신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아니 오히려 ‘혁명’이라고 얘기할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단지 우리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보기 때문에 감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지금의 1년은 수 십년 전 과거의 10년 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도 생각의 속도는 편견과 구시대적 가치관으로 인해 세상만큼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산업혁명이 시작 됐는데 계속 농사만 짓고 사는 것이 최상이라고 믿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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