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으로 가는 까닭은

김용운 기자I 2014.07.15 07:02:00

8월14~18일 방한기간 교황이 방문할
한국 천주교 대표 성지 미리 돌아봐
조선 첫 사제 김대건 신부 고향 '당진 솔뫼성지'
천주교인 1000여명 목숨 잃은 '서산 해미성지'

[당진·서산=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그곳은 ‘내포’(內浦)라 불렸다. 밀물 때면 삽교천을 따라 바닷물이 들어왔고 이 물길을 따라 배들이 오갔다. 충청남도 서북부인 당진과 예산, 홍성 및 서산 등 곡창지대를 아우르는 내포지방은 내륙이면서도 위치상 외부와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다. 19세기 내포 일대에는 100가구 중 80가구가 천주교를 믿을 정도로 교세가 커졌다. 그러나 ‘서학’이라며 천주교를 금하던 조선은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했고 종교적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천주교인이 고문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내달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품에 오르는 124위의 천주교 순교자 중 49명이 바로 내포 출신이다. 신앙을 위해 스스럼없이 목숨을 버린 순교자들의 고향. 이곳이 최근 세계적인 가톨릭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처음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자품에 오르는 한국의 순교자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칠 곳으로 내포지방의 천주교 성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8월 15일 솔뫼를 찾아 조선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기린다(사진=김용운 기자).


◇조선 최초의 사제 김대건

열다섯. 이제 사춘기를 막 벗어난 소년은 파란 눈의 이방인에 의해 유학생으로 선발됐다. 그를 추천한 이는 정약용의 조카인 정하상(1795~1839)이었다. 정하상은 조선인 사제를 키우기 위해 충남 내포의 솔뫼가 고향인 소년을 프랑스 출신의 모방 신부에게 추천한다. 모방 신부는 김대건(1821~1846), 최양업(1821~1861), 최방제(?~1839) 등 세 소년에게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로 가서 사제수업을 받을 것을 명한다.

세 소년은 1837년 12월 한양에서 마카오를 향해 육로로 떠난다. 직선거리로만 해도 수천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이다. 북풍이 몰아치는 만주벌판과 황사가 몰아치는 요동을 지나 오직 사제가 되겠다는 일념 아래 이들은 6개월여간을 걷고 또 걸어 마카오에 도착한다. 김대건은 1844년 부제서품을 받고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는다.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로마 가톨릭의 신부가 된 것이다. 최양업은 1849년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의 두 번째 신부가 된다. 동기였던 최방제는 마카오에서 공부 중 병사했다. 이렇듯 자발적으로 사제를 배출하고 가톨릭 신앙을 계승한 한국 천주교는 1984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포함해 103위의 순교성인을 배출한다.

‘솔뫼’는 소나무동산이라는 순우리말에서 따왔다. 삽교천이 막히기 전까지 솔뫼 앞은 서해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안가였다고 한다(사진=김용운 기자).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 ‘솔뫼성지’

천주교 신자들에게 솔뫼성지(충남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는 김대건 신부의 고향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증조부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증조부·조부·아버지가 순교를 했다. 김대건 신부는 솔뫼에서 일곱 살까지 살다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안성의 미리내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솔뫼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지로 정해져서다. 방한 일정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15일 오후 솔뫼성지를 찾아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참가자들과 만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첫 번째 ‘면’ 단위 방문지로 정한 것은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라는 상징성이 크다. 김대건 신부가 태어날 당시 솔뫼는 이른바 충남 내포지방의 일원이었다. 내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당진과 예산 등 솔뫼 인근 지역은 서해의 바닷물이 내륙까지 들어오는 곳이었다. 솔뫼성지 앞의 논들도 김대건 신부가 살던 당시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닷가였기 때문에 해풍을 막기 위해 소나무 동산이 조성됐고 소나무 동산이란 뜻의 ‘솔뫼’는 여기서 유래됐다. 1906년부터 합덕성당의 크렘프 신부가 솔뫼의 성역화를 위한 초석을 놓았고 1973년 본격적인 성역화 사업이 시작돼 2004년 야트막한 소나무 동산 아래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복원됐다.

솔뫼성지에는 이외에도 대형 목조 십자고상, 김대건 동상, 기념성당, 기념관, 솔뫼아레나(야외극장) 등이 조성돼 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친필 편지와 일기, 옥에 갇혔던 1845년에 그린 조선전도 등이 전시돼 있다. 김대건 신부는 25세에 한강변 새남터 모래밭에서 목이 잘리는 군문효수를 당한다. 김대건 신부는 영어·프랑스어·라틴어·중국어 등 4개 국어에 능했고 세계지도를 그릴 만큼 당대 조선의 젊은 석학이었다. 김대건 신부의 능력을 높이 산 조정은 그를 회유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순교를 택한다. 비단 천주교 신앙을 갖지 않았더라도 솔뫼성지에서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위해 부모와 이별하고 1만리가 넘는 길을 기약 없이 떠난 15세 소년은 어릴 때 집 뒤의 솔밭을 뛰놀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라도 소년 김대건은 자신이 사제가 되는 것 외에도 교황의 조선 방한을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200여년 뒤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은 10억 가톨릭 신자를 대표해 성인이 된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찾아 직접 흠향을 드린다. 천주교 신자처럼 ‘신앙의 신비’를 떠올리긴 어려울지라도 ‘역사의 신비’를 떠올리기엔 충분하다.

해미읍성. 8월 17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내에서 2만50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봉헌한다(사진=서산시청).


◇해미…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나절 머무는 곳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중 솔뫼성지 외에도 해미순교성지(충남 서산시 해미면)와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을 찾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17일 오전에 해미순교성지에서 아시아 주교들과 만난 뒤 오후에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해미읍성에서 봉헌한다. 교황 방한 일정 중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바로 서산의 해미다. 해미순교성지는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 이후 1882년(고종 19년)까지 이어진 천주교 박해시절 내포지방을 비롯한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이들은 당시 감영이었던 해미읍성으로 끌려와 취조와 고문을 당한 뒤 지금의 해미순교성지 자리에서 처형을 당했다. 해미순교성지에는 해미읍성을 본딴 모양의 해미성당과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이 있다.

해미순교성지에서 약 2㎞ 떨어진 해미읍성은 고창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읍성이다. 높이 5m, 둘레 약 1.8㎞로 일제강점기 이후 훼손됐다가 근래 들어 동원과 객사가 복원됐다.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진 해미읍성 성내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나 그 풍경 뒤에는 피의 역사가 서려 있다. 19세기 이곳으로 잡혀 온 천주교인들은 배교를 강요당하며 숱한 고문을 받고 죽어갔다. 신앙이 무엇이기에 죽음까지 불사했을까. 8월 17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미읍성 내에서 2만 5000여명의 신자들과 야외미사를 봉헌하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순교의 의미와 이 시대의 종교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역설할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는 CNN이 생중계할 예정이다. 덕분에 충청남도와 당진·서산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에 한껏 고무돼 있다. 충청남도는 내포 지방의 천주교 성지를 잇는 버그네순례길을 만들어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조성할 계획이다. 솔뫼성지에서 시작되는 버그네순례길은 합덕장터와 예당평야의 물을 대주던 합덕제, 충청도 천주교의 시발점이었던 합덕성당, 또 무명 순교자자 묘역을 거쳐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으로 와 병인박해 때 순교한 다불뤼 주교의 삶이 깃든 신리성지로 이어지는 13.3㎞의 길이다. 충남도청 문화관광국 관계자는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 마음과 체력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고 말했다.

충청남도에 ‘국빈’의 방문은 처음이다. 당진·서산시는 안동 하회마을이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방문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부상한 것처럼 교황이 방문하는 솔뫼와 해미성지가 세계적인 천주교 성지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때문에 솔뫼와 해미성지 주변은 길을 넓히고 주변을 정리하느라 꽤 분주해 보인다. 행사 당일 밀려드는 인파를 수용하기 위해 불가피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소 언행으로 미뤄봤을 때 오히려 번잡스럽게 치장하지 않은 우리네 시골 정경이 그에게 더 깊은 감흥을 남길 것 같기도 하다.

버그네순례길에 자리잡은 합덕성당. 성당 뒤편은 유럽의 수도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고즈넉하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으로 끌려간 페랭신부의 가묘를 비롯해 천주교 순교자들의 묘비가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합덕성당 뒤편 합덕제 인근에 조성된 버그네순례길 표지. 개망초꽃이 흐드러진 길의 정취가 순례길 내내 이어진다(사진=김용운 기자).
버그네순례길(사진=충남문화산업진흥원)
솔뫼성지와 해미성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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