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위기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 가운데 연대 보증으로 채무를 진 11만여명의 채무원금을 최대 70%까지 탕감하고 최장 10년간 나눠 갚을 수 있도록 구제하기로 했다. 지원대상은 1997~2001년 사이에 도산한 기업의 연대보증자 중 채무원금이 10억원 이하인 경우다.
이는 잘못된 국가 경영으로 외환위기를 당해 불의의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경제적인 사면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볼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난으로 기업이 부실화되는 과정에서 본인의 채무가 아닌 연대보증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순간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나면 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지난 2월 2만 4000여건의 국민제안을 접수했을 때 신용불량자의 재기를 막고 있는 현행 신용회복제도의 모순과 현실을 무시한 금융기관들의 영업 행태를 지적하는 사례가 많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신용불량자가 된 적이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는 특허기술도 보유하고 수익성 높은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있지만 민간금융권에서 자신의 신용등급을 최하위에 둔 채 어떤 대출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 달라는 민원을 냈다.
성실하게 살아왔음에도 한번의 잘못으로 인한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가 이번에 민간금융권에서 보유하고 있는 연체기록을 일괄삭제해 신용불량자 1104명이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나 앞서 7월부터 제2금융권에서의 연대보증을 폐지키로 한 것도 한번 실패한 기업인들에게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시점에 신용불량자를 구제해 주는 것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 논란을 낳는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행복기금 출범에 따라 채무자들 사이에 ‘빚을 갚지 않아도 언젠가 탕감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열심히 일해서 꼬박꼬박 돈을 갚아 온 사람들과의 역차별 논란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는 ‘눈먼 돈’이 되지 않도록 구제대상을 심사할 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당사자의 자활의지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나아가 개인의 채무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는 좋지 않은 선례를 더 이상 남기지 않는 게 최선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