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19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지난 15일 복권위원회 사무처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복권인식도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복권하면 대표적인 사행산업으로, 주로 저소득층이 산다는 통념과는 차이가 컸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복권 구매자 중 월 가구평균 소득이 300만원 이상인 가구가 69.4%였다는 점이다. 복권위는 "소득이 많을수록 복권 구매비율이 높다"고 강조했다. 고소득층이 주로 복권을 산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또 사행성에 대한 인식은 복권(3.7%)은 카지노(79.1%)나 경마(11.7%)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고, 심지어 주식투자(4.1%)보다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76%는 흥미나 재미로 복권을 사고, 72%는 나눔 행위, 71%는 당첨이 안 돼도 좋은 일로 생각한다는 낯뜨거운 내용도 포함됐다.
이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복권위는 "복권이 삶의 흥미나 재미 가운데 하나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고 있고, 1회 평균 구매금액이 낮은데다 월평균 소득 300만원 이상 구매비율이 높다"며 "국민 사이에서 건전한 오락문화로 정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설문조사를 뜯어보면 복권위의 입맛대로 해석한 측면이 강하다. 높은 소득의 기준으로 삼은 300만원부터 그렇다. 맞벌이 부부가 매달 150만원씩 벌어도 가구당 소득이 300만원이다. 이들을 고소득가구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실제 복권구매층의 70%는 도시근로자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인 427만원보다 못 버는 가구다. 저소득층이 주로 복권을 산다는 통념은 틀렸다 해도 주 구매층은 고소득층이 아니라 서민이라고 봐야 한다.
주식보다 사행성이 낮다는 결과도 마찬가지다. 카지노나 경마 경륜 경정 주식 복권을 펼쳐놓고 가장 사행성이 높은 게 뭐냐고 물었으니 당연히 카지노나 경마처럼 누가 봐도 도박인 항목을 찍었을 것이다. 만약 주식과 복권만 놓고 사행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봤다면 결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복귄위가 이런 자료를 낸 것은 최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를 향한 시위 성격이 강하다. 복권위는 작년 복권 판매액이 사감위의 한도를 넘기자 복권발행 총량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복권위는 중장기적으로 복권 발행 한도를 현재의 2배 수준인 5조원가량으로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감위는 복권도 엄연한 사행산업으로 엄격한 총량 규제를 적용하는데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며 복권위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복권위의 조사결과는 복권이 주식보다 사행성도 없고 게임과 비슷한 수준의 오락인데 왜 한도를 늘려주지 않느냐는 항변처럼 보인다.
물론 복권이 카지노나 경마 같은 다른 사행산업에 비해 도박성이나 중독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다른 사행산업 비중을 줄이고 복권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조사결과를 멋대로 해석한 결과물을 갖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볼썽사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