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반도체 필수공익사업' 머리 맞대자

김정남 기자I 2024.08.12 06:00:00

반도체 공장 셧다운 땐
천문학적 경제 손실
삼성 노조 파업 장기화에
노란봉투법 처리 악재까지
국가가 ''최악 사태'' 막아야

(그래픽=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산업부 차장] 한국 공기업 민영화의 역사를 보면, ‘이곳이 공기업이었나’ 하는 기업들이 많다. 1960~70년대 대한항공, 대한통운, 인천중공업, 워커힐호텔 등이, 1980년대 이후 포항제철,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등이 그랬다. 과거 공기업의 의미는 지금과 달랐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산업군은 정부 주도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후 경제 발전과 함께 민영화가 속속 이뤄졌다. 공기업은 시대상에 따라 변하는 ‘시대의 산물’인 셈이다.

항공업은 2005년 조종사 파업 사태를 계기로 2008년 필수공익사업에 지정됐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 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거나 △대체가 용이하지 않은 등의 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정했다. 수도, 전기, 철도, 석유 등 특정 산업군의 노조 파업은 국가가 직접 나서서 막겠다는 취지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2005년 당시 건설교통부가 필수공익사업 신규 지정 검토를 밝힌 이유가 항공업의 경제적인 중요성과 정부의 물류중심국가 추진 노력이었다”며 “공익의 개념은 불변이 아니다”고 했다.

국가가 어떤 산업을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는 정답이 없는 문제다. 시대상에 따라 국가가 손을 떼는 경우도 있고, 더 강하게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새삼 ‘국가의 역할’을 거론한 것은 요즘 반도체를 둘러싼 내우외환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주요국 정부가 반도체에 보조금을 쏟아붓는 현실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시대의 특징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언급했듯 라인 하나 건설하는데 수십조원이 드는 반도체 산업은 기업 한 곳이 영위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반도체는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의 핵심이다. 반도체에 밝은 인사들은 “정부가 민간에 수십조원을 지원하는 게 우리는 낯설 수 있다”면서도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더 걱정되는 건 나라 안 사정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삼노는 최근 한 달 가까이 총파업을 강행했다. 기자는 전삼노가 총파업을 한다고 했을 때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놀랐는데, 그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니 점차 무뎌진 느낌을 받는다. 전삼노는 정치권 등 외부 세력들과 연대하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 공장 셧다운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이 이제는 상시적인 리스크로 떠오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거대 야권이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단독 처리하면서 파업 만능주의가 만연한 여건까지 만들어졌다. 반도체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에 이보다 더 큰 악재는 찾기 어렵다. 국내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삼성 파업은) 공멸의 길 아니겠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제 정부와 국회, 산업계, 학계는 2005년 항공처럼 반도체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는 △공급 부족시 산업계 대란이 불 보듯 뻔하고 △국민 경제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높으며 △대형 생산라인을 운영하는 곳은 삼성과 SK 정도다. 현행법상 필수공익사업 요건에 얼마든지 부합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최악 사태를 막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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