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과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소하려면 대기업 일자리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그제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KDI 포커스 보고서(작성자 고영선 선임연구위원)를 냈다. KDI는 이 보고서에서 경제 교육 복지 분야의 다양한 통계 분석을 통해 임금과 복지 면에서 월등한 대기업의 일자리 부족이 대학입시와 취업의 과열 경쟁을 낳고 이것이 저출생과 수도권 집중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5~9인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불과하다. 이는 통계청이 그제 발표한 ‘2022년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리기업 중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591만원)은 중소기업 근로자(286만원)의 2.07배에 달했다. 이런 양극화가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상위권 대학과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올인 경쟁을 펼쳐야 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대·중소기업의 복지 수준 차이도 크다. 대기업은 출산 휴가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데 비해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대기업 문은 너무도 좁다. 한국은 전체 일자리에서 대기업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13.9%(2021년)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특히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미국(57.7%)의 4분의 1, 프랑스(47.2%) 영국(46.4%) 독일(41.1%)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만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좁은 취업문은 정부가 대기업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이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결과가 됐다.
한국적 풍토병이 된 입시지옥과 취업 과열 경쟁을 해소하려면 대기업의 문을 넓혀야 한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 해소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으로 대기업 일자리를 늘려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에는 과도한 규제를 풀고 중소기업에는 난립한 각종 지원 정책을 합리화해야 한다. 대기업 규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막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기업 규제 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