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한한 재미 석학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말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양극단의 집회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신 교수의 입을 빌리자면 대한민국은 ‘정치의 실종’ 상태다. 연일 저렴하고 거친 말만 주고받을 뿐 대화나 타협은 없다. 당장 맞닥뜨린 글로벌 경제 블록화, 중국 경제침체, 북·러 밀착 등 경제·안보 ‘복합위기’에 대한 고민은 찾기 어렵다. 미래 세대를 위한 노동·연금·공공·규제·교육 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민생 챙기기를 위한 정책경쟁을 원하는 국민 바람은 사치일 뿐이다.
치열하게 대립하다가도 위기대응과 국익을 위해서라면 ‘초당적’으로 똘똘 뭉치는 미 정치권과 대비되는 만큼 신 교수에게 현 시국의 단면은 더 뇌리에 강하게 박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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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경제계로 돌려보자. 전자업계 맞수인 삼성·LG는 이제 친구이면서 동시에 적인 프레너미(Frenemy) 관계로 발전했다. LG디스플레이 패널이 적용된 삼성전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가 출시된 게 대표적이다. 앞으론 양사의 가전이 제공하는 고유의 기능·서비스도 삼성 스마트싱스·LG 씽큐 등 서로의 스마트홈 플랫폼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올 들어 국내 5대 은행이 삼성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삼성청년SW아카데미’를 고리로 핀테크 소프트웨어 인재육성에 함께 나서기로 한 점도 기업 간 ‘상생의 선순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모두 경쟁은 계속하되 고객과 미래 세대를 위해 협력할 건 협력하겠다는 대승적 협치(協治)의 결과물들이다. “당신과 내가 가진 사과를 서로 교환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각자 사과 한 개씩을 가진 거지만, 하나의 아이디어를 서로 교환한다면 우리 각자는 두 개의 아이디어들을 가진 것”이라는 미국의 유명 극작가 버나드 쇼의 격언이 제대로 작동하는 게 우리 산업계이다.
AI(인공지능)·신약·로봇과 같은 신성장 동력을 위해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는 것도 우리 기업들의 몫이다. 정치권에선 이와 관련된 논의나 담론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청년층 고용시장의 부진 흐름이 지속하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는 정치인은 본 적이 없다. 그 사이 반도체 부문 등의 대규모 적자에도, 작년 5월 ‘향후 5년간 8만명 신규채용’이라는 약속을 지키고자 삼성 20개 계열사가 올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전은 또 어떤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만이 ‘열일’ 하는 모양새로 느껴지는 건 분명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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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국 정치는 4류’라고 일갈한 ‘베이징 발언’이 나온 지도 어느덧 30년이 다 돼 간다. 여전히 반목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정치가 4류에서 벗어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치인은 몇이나 될까. 반대로 ‘프레너미’ 시대에 순응한 기업들에 이제 ‘1류’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도 아까울 정도다. ‘정치가 바로 서야 국민이 살고 나라가 흥한다’는 흔하디흔한 격언을 되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