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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미통제가 부른 官災

이연호 기자I 2023.07.20 06:00:00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 사망
침수 예견됐음에도 홍수 경보 4시간 지나도록 차량 미통제
'네 탓' 하기 바쁜 공무원..職 걸고 '안전 대한민국' 건설 나서야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께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를 미호강에서 범람한 흙탕물이 덮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필자는 각종 재난 재해가 발생한 후 여야 정치인들이 현장에 나타나 유가족 등을 위로하는 장면이 참 어색하다. 정치인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지만, 그 같은 행보가 실질적으로 유가족 등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나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현장에 방문해 하는 발언들이라곤 “깊은 위로를 표한다”거나 “적극 지원하겠다”가 사실상 전부다. 보다 심하게 이야기하면서 ‘고작 사진 찍으러 가는 행사’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안 하면 안 한다고 당장 언론부터 들고 일어나 난리일 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보여 주기 식’ 재해 지역 방문 행사를 가급적 지양하고, 그런 행사를 애초에 안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9개월도 채 안 돼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측면에서 그것과 매우 닮아 있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생겼다는 점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특히나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인재를 넘어 관재(官災)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교통 통제만 미리 이뤄졌어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고였음에도 무책임한 공무원들 탓에 14명의 아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물론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였다.

오송 궁평2지하차도 인근 미호천교 제방이 무너지면서 유입된 물이 지하차도를 덮쳤고, 지하차도는 불과 2~3분만에 6만 톤의 물로 가득찼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궁평2지하차도는 미호천교와 직선거리가 600m 정도고, 가까운 제방과는 200여m에 불과한 데다 인근 논밭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가 예견됐던 곳이었다. 그럼에도 행정 당국이 홍수 경보가 내려진 뒤 4시간이 지나도록 차량 통제를 하지 않는 등 정부와 지자체의 하천 관리는 미비했다. 이쯤되면 ‘관재’ 비판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사고 직전까지 최소 세 차례의 금강홍수통제관리소와 주민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충청북도와 청주시, 흥덕구청, 경찰은 궁평2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9명의 사망자가 나온 청주의 747번 급행버스가 폭우로 통제된 다른 길을 피해 이곳 지하차도를 지나다 사고를 당했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사고가 발생하자 책임 소재를 두고 공무원들끼리 서로 네 탓만 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송 지하차도 사고가 발생하기 이틀 전 개최한 ‘호우 대처 상황 점검 회의’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인명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라며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사전 대피와 통제를 확실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실상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재발 방지책 마련과 관련해 정부와 국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대형 사고 직후 으레 있는 ‘언어의 잔치’가 돼선 안 된다. 이번 사태를 뼈아픈 교훈 삼아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대통령 이하 모든 공무원들이 직(職)을 건다는 마음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여야 지도부의 재해 현장 방문 자체가 없어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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