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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해금, 과거와 미래가 만나다

이윤정 기자I 2023.04.03 05:30:00

-심사위원 리뷰
서울해금앙상블 '해금의 세계'
개량악기 연주 비교…창작음악계 화두 제시
전통, 변화 발전하며 미래로 이어져야

[한덕택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위원] 해금(奚琴)은 고려가요에서도 언급이 될 정도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악기다. 실크로드를 통해 이 땅에 들어온 해금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소재인 팔음(八音)의 재료로 만든 찰현악기다. 한(恨)과 흥(興)의 양면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음색으로 궁중음악은 물론이고 민간에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사람의 음색에 가까운 촉촉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해금의 소리는 다양한 표현으로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한국음악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악기로 자리매김했다.

이성천 교수의 해금을 위한 창작곡이 나온 이후 국악관현악에서 해금의 위상이 높아졌다. 정수년, 강은일, 김애라, 김성아, 노은아 등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연주자들의 다양한 창작음악을 통해 해금은 국악의 저변확대와 창작국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서울해금앙상블 ‘해금의 세계’(3월 12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공연은 솔리스트가 아닌 앙상블로서 해금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서울해금앙상블 ‘해금의 세계’(사진=서울해금앙상블).
이번 공연에선 가곡(歌曲)의 ‘우조두거(羽調頭擧)’의 주된 선율을 이루는 피리·대금의 가락을 해금의 주법과 시김새로 재해석한 ‘경풍년’, 태백산맥을 끼고 있는 동부지역의 민요로 구성한 ‘메나리토리에 의한 3중주’ 등 전통음악을 선보였다. 이어 외국인 작곡자들의 창작곡과 해금 연주의 현대화에 기여한 이성천 교수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쥐구멍에도 볕 들었어도’ 등이 연주되었다.

특히 노은아가 재구성한 ‘개량해금을 위한 민요산책’은 1960년대 이후 시도되었던 다양한 개량해금을 한자리에 모아 비교한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해금 창작음악이 활성화되며 해금의 음역을 확장시키고 음향을 증폭시키기 위해 현의 굵기, 울림통의 크기를 달리하는 악기를 개발했다. 다양한 음색의 구현을 위해 현과 통의 수를 늘리거나 울림통의 재질 변경, 받침대를 활용한 것을 한자리에 모아 개량악기의 연주를 비교한 것이다. 이는 사장될뻔한 악기 개량의 성과를 공유하며 창작음악계에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국악기 개량을 위한 다양한 작업과 시도들이 상당 기간 진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개량악기의 보급이 더딘 것은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태도와 더불어 개량악기를 수용할 수 있는 음악, 즉 창작 작품들이 부족한 점도 문제였다.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개량악기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창작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연주에는 해금계의 원로들뿐만 아니라 각 대학과 연주단체에서 해금을 연주하는 1·2세대 창작음악 연주자들과 많은 해금 전공자들이 함께했다. 공감으로 응원하는 흥겨운 해금축제의 장이었다. 전통은 단지 과거의 계승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당대적 감수성을 수용해 다양하게 변화 발전하며 미래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실험적 자세와 도전정신을 담은 창작음악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서울해금앙상블 ‘해금의 세계’(사진=서울해금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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