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5년 전 좌측 유방암 진단으로 유방 전절제술을 받은 65세 여성분이 기억에 남는다. 2년 전에는 자신의 뱃살로 유방 복원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빠졌던 머리털과 눈썹도 이제는 거의 다 회복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암투병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유방암 치료에 매진하던 때에 남편이 바람이나 가출을 해버렸다고 했다. 가끔 진료실에 남편을 데리고 오시는데 내게 남편이 정신 좀 차리게 혼내달라고 간곡히 부탁도 하신다. 진료실 안에 멀뚱하게 서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복잡해진다.’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에 따른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심리 분야에서도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하다. 또 국내 유방암 환자들의 발병 연령이 낮아지는 만큼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천대 길병원 외과 김윤영 교수는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를 위와 같이 들면서 유방암 환자들의 심리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은 치료법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절제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급격한 신체적 변화, 여성 호르몬 수치의 감소 등으로 심정적 변화를 겪게 된다.
김 교수는 “절제수술을 받은 유방암 환자들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충격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며 “이때 배우자나 가족 들의 지지로 이 같은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결국 부부의 이혼, 별거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과거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환자의 15.3%가 이혼, 별거를 겪었다는 결과가 있다. 통계청 기준 우리나라 여성의 이혼율 4.8%보다 약 세배가 높은 수치이다.
김윤영 교수는 “우리나라 여성 대다수는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그리고 딸로 살게 되는데 유방암에 걸린 환자가 이 같은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 가족들로부터 적절한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 트라우마로 이혼, 별거, 자살 등의 가족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국내 유방암 환자들 발병 연령 낮아…경제적 어려움도 커
국내 여성암 1위인 유방암 환자들의 발병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점은 환자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발병 연령은 매년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서구권 국가들은 대부분 50대에서 높은 발병률을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40대 발병률이 가장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19~45세 사이 유방암 환자가 전체 35%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은 서양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생하는 만큼, 평생 정기적인 관리를 유지해야 하는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크다”며 “대다수 환자들이 한창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해야하는 연령에 발병한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나이에 병마와 씨름하는 것은 개인적, 국가적 손실이 매우 큰 부분”이라고 말했다.
유방암 치료를 끝낸 후에도 상당수의 유방암 생존자들은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주요 후유증으로는 각종 통증, 만성 피로감, 림프 부종, 인지기능 장애 등의 증상들이 있다. 게다가 재발, 전이 가능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불안, 우울 증상도 흔하다.
다행히 2015년부터 유방암 재건 수술에 대한 보험적용이 열리면서 재건 수술 건수 또한 증가되고 있다. 유방 재건 수술을 동시에 하면 수술 후 유방 상실로 야기되는 심리적 충격을 줄여주며 장기적으로 체형 뒤틀림 현상으로 인한 만성 통증 또한 줄여주는 등의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과정과 결과가 환자의 눈높이에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기 때문에 유방암 재건 수술로 인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의료진과 상담 후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출산률이 낮아져 인구감소에 직면한 만큼 국가 차원의 통합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들 유방암 환자들이 빠르게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 일원으로 당당히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