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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talk 살롱]명품과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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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근 기자I 2023.02.27 05:50:00
[김재환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부문 상품본부 패션부문장]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셰’(Bon marche)의 시작은 세계 엑스포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기원한다. 1800년대 서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급속하게 변화했고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신흥 자본세력이 생겨났다.

이 시기에 열린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왕족과 귀족으로 국한됐던 구매력 있는 고객층이 부유한 상공인까지 확대된 것을 목격한 아리스티드 부시코(Aristide Boucicaut)에 의해 박람회의 상용화 즉, 박람회에 소개된 ‘수 많은 카테고리의 수 많은 상품을 항상 살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백화점이 탄생했다.

1852년 봉마르셰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백화점을 위협하는 여러 업태의 도전이 있었지만 백화점은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본질이 갖는 매력으로 소비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제껏 온라인 커머스만큼 거센 도전자는 없었다. 네이버 쇼핑, 쿠팡, 11번가 등의 이커머스는 수많은 카테고리의 상품을 취급한다. 마켓컬리, 무신사, 오늘의 집 등 이른바 버티컬 쇼핑몰은 특정 카테고리의 수많은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온라인 쇼핑은 ‘항상’을 넘어 ‘365일, 24시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백화점의 본질적 기능을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백화점이 꺼내든 필살기는 최저가 경쟁, 빠른 배송, 반품 및 교환의 편리성이라는 이커머스의 전략과는 다른 ‘명품’ 판매 확대였다. 지난해 ‘엔데믹에 따른 명품 보복소비로 백화점 실적호조’라는 기사가 계속될 정도로 그 결과는 달콤했다. 달콤함에 대한 일종의 정산이랄까, 명품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증가했고 명품 매출이 전체의 45%에 육박하는 백화점이 있을 정도로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

명품 브랜드는 강력해진 교섭력을 바탕으로 넓은 면적, 유리한 거래조건, 독자적인 마케팅 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면적, 조건, 마케팅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명품의 존재감 확대가 백화점의 본질적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데 있다.

백화점(百貨店)은 말 그대로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돼야 한다. 하지만 명품 비중이 커지면서 ‘특정한 상품을 구매하는 곳’으로 인식이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깊어지면 고객에게 백화점은 지워지고 특정한 상품만 남게 된다. 한때 백화점 왕국이던 일본에서 최근 백화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의 백화점도 더 늦기 전에 명품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명품과의 헤어짐은 배제가 아니라 의존도를 낮추자는 의미다. 지금은 백화점의 무기가 오롯이 명품인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무기를 개발할 시점이고 그 해답은 공간에 있다.

가슴 설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움직임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재작년 여의도에 문을 연 더 현대 서울은 명품 MD의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성공적인 공간활용을 통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상업시설을 배제한 여백의 공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은 트렌디한 F&B공간, 라떼 세대는 모르는 브랜드로 지하 2층 전체를 꽉 채운 MZ세대를 위한 공간 등이 주요했다.

지난달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은 온라인에서 소위 핫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떠그클럽’의 팝업스토어를 통해 명품의 전유물이라고 인식되던 ‘오픈런’ 현상이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과의 전장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끌어들인 의미 있는 행사임과 동시에 명품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론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성공 사례가 이어진다면 백화점은 재미있는 경험을 얻기 위해 가야 하는 공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업로드하고 싶은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고객은 백화점을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인식 할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온 탕웨이의 명 대사를 인용해 고객님들께 서운한 속마음을 털어놓을까 한다. “(명품없는 백화점)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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