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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으로, 로스쿨로"…조직 등지는 엘리트 경찰들

박기주 기자I 2020.05.07 01:11:00

강남서 형사과장 등 `승진코스` 경찰들, 대기업 전직
로스쿨 진학 경찰관도 작년 27명서 올해 57명 이상
의원면직 경찰공무원, 지난 3년간 415명에 이르러
"승진 스트레스 받기보단 새로운 기회 찾는 게 나아"

[이데일리 박기주 손의연 기자] 최근 경찰 내에서도 우수한 인재로 평가 받는 이들이 대기업으로 전직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하면서 조직을 속속 등지고 있다. 인사 적체로 인해 승진이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큰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공무원 의원면직 추이(그래픽= 이미나 기자)
◇대기업·로스쿨로 떠나는 경찰 엘리트들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장이 KT(030200) 법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함께 경찰청 기획조정관실 소속 경감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소속 경위도 같은 회사로 전직했다.

경찰에서 민간기업으로 전직하는 사례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자리를 옮긴 이들의 경력이나 면면을 보면 다소 의아함이 드는 대목이 있다. 강남서 형사과장과 본청 및 서울청 등은 고위직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은, 경찰 내에서도 이른바 `엘리트 코스`에 있는 직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사표를 쓰고 나갈 줄 몰랐다”며 다소 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의 인재 유출 통로는 사기업만이 아니다. 전문직 자격증을 따기 위해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에 따르면 올해 전국 24개(중앙대 제외) 로스쿨에 입한한 경찰대 졸업생은 최소 57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7명 수준이었던 경찰대 출신 로스쿨 입학생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경찰대는 경찰 간부 육성을 위해 설립된 특수대학으로, 학비나 기숙사비 등이 지원된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학생들이 진학하고, 자연스레 경찰 조직의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따게 되면 외부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이들에게 들어간 세금이 무색하게 되는 셈이다. 특히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로펌에서 경찰 출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전직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한 현직 경찰 간부는 “로펌에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경찰대 국비지원액을 반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충분히 전직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갑룡 경찰청장도 지난 4일 간담회에서 “(로스쿨 진학 경찰관들의) 이직률 추이 등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청 전경(사진=이데일리DB)
◇총경 이상 고위직 단 0.5%…“승진 스트레스보단 새 기회”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본인이 퇴직 의사를 밝히고 퇴직(의원면직)한 경찰관 수는 17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대비 20% 증가한 수치로, 지난 3년간 415명에 달한다. 특히 의원면직을 신청한 간부급(경위 이상) 경찰관 수는 2017년 51명, 2018년 56명, 2019년 50명으로 매년 50명을 웃돌고 있다.

이처럼 엘리트 경찰관들이 조직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한정된 승진 기회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고위직의 비중이 적은 `압정형` 인적 구조로 유명하다. 여기에 일정 계급(경정) 이후부터는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계급정년’ 탓에 경위부터 시작하는 경찰대 출신들에게는 안정적인 직장도 아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전체 경찰관 중 5~6급(경정·경감) 비중은 9.3%(1만1279명), 그 이상의 고위직은 0.5%(641명)에 불과했다. 국가직 공무원 중 인력이 많은 편인 국세청의 경우엔 5~6급 비중이 28.5%, 그 이상 고위직 비중이 2.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승진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승진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니 돈을 더 많이 준다는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한 현직 경찰관은 “경찰도 내부 승진 외 다양한 진로로 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측면 때문에 내부에서도 이들 이직자를 부정적으로 보지만은 않는다”며 달라진 경찰 내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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