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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홍콩 거리가 민주화 시위대로 가득 찼던 일명 ‘우산혁명’이 끝날 무렵 홍콩을 찾았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우리는 법치주의 도시인 홍콩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규모 시위대가 해산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청년들이 거리 곳곳을 지키며 ‘자유’를 외쳤다.
시위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로왔다. 시민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음식을 나눴다. 홍콩 시위대는 비폭력을 의미하는 노란색 리본을 달고 경찰의 최루탄을 쇠파이프가 아닌 노란 우산으로 막았다.
5년이 지난 지금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에 반발해 일어선 시위는 양상이 다르다. 평화시위로 시작했지만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경찰 진압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생명이 위독한 중상자들도 나왔다. 한 홍콩 교민은 “시위가 길어지면서 조금씩 과격해 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가 과격해진 배경은 과거 우산혁명이 실패로 끝난 기억 탓이다. 시위대가 거리에서 철수하자 중국은 입맛대로 홍콩 행정장관을 임명했고, 시위를 주도했던 지도부들은 감옥으로 끌려갔다. 중국 정부에 대한 커진 반감이 당시보다 10배는 많은 100만 시민을 거리로 불러냈다.
특히 당시 우산혁명을 주도한 이들은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청년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터 노년의 어르신들까지 전세대를 아우르고 있다. 3년전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시민들처럼 말이다.
홍콩 정부는 결국 ‘범죄인 인도법안’ 추진을 연기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인어서 갈등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1997년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2047년까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정치, 입법, 사법의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100만 시위대는 당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에 거리로 몰려나왔다. 약속과 원칙을 지키는 것. 홍콩 사태 해법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