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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대기업 입사 동기들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그는 직장 생활 내내 “단 한번도 재테크는 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을 한다. 자산을 불리는 재테크 대신 자신에게 투자해 몸값을 올리는 재테크를 택했다. 최근 서울 중구 퍼시픽타워 하이파킹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시장이 자신의 몸값을 결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시장의 냉정한 평가가 두렵더라도 스스로의 날개(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몸값을 결정하는’ 곳에서 일하라
첫 직장인 대우에 입사했던 그는 중국 주재원 근무 이후 외국계 기업인 월마트 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첫 외국계 기업 근무 경험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박 대표는 “일한만큼 성과를 인정받는 시스템이 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며 “1년에 2~3 차례 연봉이 오르는 경험을 했다”고 회상했다. 월마트 코리아에서 파격 연봉 상승을 경험했던 그는 코카콜라로 스카우트 되며 연봉을 또 한단계 올렸고 스톡옵션도 받았다. 이미 그는 30대 후반에 월급쟁이들의 꿈 ‘연봉 1억’ 고지를 찍었다.
지금도 대기업 입사 동기 친구들을 만나면 올해 보너스와 휴가, 인센티브 등이 대화의 주된 소재지만 그는 “동년배 직장인들과 관심사에서 차이가 크다”며 “지금의 연봉 보단 내일의 연봉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로써 성과내니 연봉이 1년에 2~3번 ‘점핑’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이제막 한국 시장에 진출한 호주계 주차관리 전문업체 윌슨파킹으로 이직할 때였다. 그는 국내에 처음 진출하는 주차 관리 시장에 흥미를 느꼈다.
국내에 처음으로 무인 주차관리 서비스가 도입된 것은 2005년이다. 당시 박 대표는 밑바닥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잘 나가던 외국계 임원이 13.2㎡(4평)짜리 사무실에서 직원 한명과 단둘이 시작하려니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공실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 주차장을 1층부터 6층까지 돌며 진땀을 뺐을 때 가장 서러웠다고 털어놓는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왜 이런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이 몰려왔지만 호주 본사에서 회장이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생각을 바꿨다. 회장은 그의 손을 잡고 직접 지하 주차장의 공실을 확인하기 위해 돌았다. 박 대표는 “윌슨파킹의 대표조차 현장을 직접 도는데 한낱 직원인 내가 뭐라고 신세한탄을 했을까라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지금도 그는 늘 현장을 중시한다. 퍼시픽타워 본사에는 하이파킹이 관리 중인 250개 주차 시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모니터링 시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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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큰 난관으로는 자신의 회사나 다름없는 월슨파킹을 떠나 경쟁사인 하이파킹으로 이직할 때를 꼽는다. 사모펀드인 VIG파트너스는 하이파킹을 인수한 이후 국내 주차관리 최고 전문가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 했다.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처음 윌슨파킹을 시작할 때는 30대 중반이었고 그때보단 그도 안정을 추구할 나이가 되기도 했다.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며 최종 확답을 못하던 그에게 불현듯 스친 생각이 있었다. ‘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앉는 이유는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조직이 간판을 떼고 스스로의 이름으로 냉정한 시장의 판단을 맞을 시점왔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날개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의 선택은 결국 시장의 평가로 돌아왔다. 박 대표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힘줘 말했다.
중요한 것은 상사가 원하는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고 식사도 거른 채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돈이 생기면 저축을 하거나 투자를 하기 보단 자신에게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돈을 담는다’는 의미는 여행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 남길 수 있는 경험에 투자한다는 의미다. 후배 직장인들에게 그는 “재테크를 위한 재테크가 아닌 스스로의 몸값을 높여야 한다”며 “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면 시장의 평가를 통해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