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공무원, 정권 아닌 국민 바라봐야

정수영 기자I 2018.05.21 03:00:00

정권 바뀐 후 삼성바이오 회계이슈 재점화한 금감원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공직사회 만들어야 시장도 안정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2015년 연말께 일이다. 대기업에 임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어느날 예고 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숨을 죽여야했다. 당시 반도체 생산라인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이 질병에 노출된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파장이 컸고, 이 대기업은 해당 근로자들에 대한 보상안을 발표한 상태였다. 이를 지켜본 관련 부처 과장급 공무원이 해당 기업 임원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그가 건넨 말의 요지는 ‘보상을 하는 것은 기업 마음이지만 정부가 만든 산재보상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들지 말라’였다. 과도한 보상을 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1년 반이 지난 지난해 여름, A씨는 그 때 그 공무원에게 또 다시 전화를 받았다. 보상이 어떻게 마무리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내용이었다. A씨는 당시 공무원의 요구(?)대로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있다’고 답했다. 당연히 그 공무원이 흡족해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을 빗나갔고 A씨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수화기를 건너온 음성은 이랬다. “아니, 정권이 바뀌었는데 해결책이 같으면 어쩌란 말입니까?”

얼마 전 만난 A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이 에피소드는 정권 초기면 항상 나오는 ‘영혼없는 공무원’의 대표적 사례다. 이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 방향을 바꾸는 공무원 사회를 비꼬는 말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병폐로 꼽힌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을 두고도 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상장을 앞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당시까지 종속회사로 분류했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재분류하면서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해 적자기업이 흑자가 됐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아직 감리위원회의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인 만큼 이를 두고 ‘맞다’ ‘틀리다’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정권이 바뀌고 금융당국의 대응 방식이 달라진 대표적 사례라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스피시장에 상장한 2016년 말 한 차례 논쟁이 붙었던 이슈로 당시 금융감독원은 공인회계사회 감리 결과를 받아들여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박근혜정부가 촛불정국으로 약화되고 참여연대와 야당의 반발이 거세자 금감원은 지난해 2월 특별감리에 착수, 1년여만에 회계처리위반 혐의가 있다는 재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이를 통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는 점이다.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 말만 믿고 투자자들은 바이오주(株) 매수를 확대했다. 하지만 정부의 바이오산업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인해 코스닥시장은 횡보하고 있다. 바이오 업종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투자 종목으로 꼽혔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후 공매도의 놀이터가 됐고, 주가는 롤러코스트를 타며 단타족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를 두고 같은 관료조직인 기획재정부의 장관까지 시장에 혼선을 줬다고 금감원을 비판했을 정도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막스 베버가 관료조직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관료의 신분보장과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어야 국민이 편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막스가 지적한 ‘영혼없는 공무원’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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