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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류 해커에서 스타트업 미다스의 손으로

김유성 기자I 2018.01.30 04:03:05

5번의 창업, 3번의 엑시트, 한번의 실패
높은 승률 비결 "똘똘한 또라이가 꿈꾸는 미래를 기다린 것"
모바일 다음은 ''메트릭스'' 세상, VR에 베팅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똘똘한 또라이를 찾아라. 그가 꿈꾸는미래를 함께 준비해라. 그러면 성공한다.”

1990년대 한국 최고 해커로 이름을 날렸던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공동 창업자(최고전략책임자, CSO). 그는 1997년 카이스트 재학생 시절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발을 들인 후 한국 벤처·스타트업 업계의 흥망성쇠를 봤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폭발, 닷컴 버블 붕괴, 모바일 플랫폼의 발달, 가상현실 등 새로운 신산업의 출현까지. 그 와중에 5번의 창업을 했고 이중 3번을 엑시트에 성공했다. 1번의 IPO, 2번의 매각이었다. 이중 하나(태터앤컴퍼니)는 구글, 또 다른 한번(파이브락스)는 실리콘밸리 기업 품에 안겼다. 그가 엔젤 투자한 기업중에는 티켓몬스터가 있다.

99%가 실패하는 스타트업에서 3번의 성공 엑시트 사례를 만들어낸 그는 한국 벤처투자업계 ‘셀럽(유명인)’이었다. 잘 알려진 그의 선배로는 장병규 블루홀 의장 겸 제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이 있다. 이해진, 김정주,김범수, 김택진 등 한국 인터넷 비즈니스 1세대격인 1986학번 세대 이후 나타난 1990년대 카이스트 출신 IT창업 2세대이기도 하다.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공동 창업자
◇메트릭스 세상 곧 온다..VR에 베팅

이런 그가 5번째 창업으로 돌아왔다. 2015년 삼성 출신 손우람 대표와 함께 창업한 리얼리티리플렉션이다. 그가 베팅한 분야는 가상현실(VR)이다. 내년 혹은 3년 뒤 아니면 그 후에 열릴 것이라고 믿는 시장이다. 보안, 검색, 1인미디어, 데이터 분석에 이은 5번째 도전 분야이기도 하다.

리얼리티리플렉션 공동창업자인 노정석 CSO(사진 왼쪽)와 손우람 CEO(사진 오른쪽)가 리얼리티리플렉션의 모바일 서비스 제품을 들고 있다.
3년전 그가 VR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VR의 폭발적 성장 가능성을 내다봤다. TV, 인터넷, 모바일에 이은 새로운 매체로 VR을 본 것이다. 노 창업가는 “남들이 안된다고 해도 미리 가서 자기 자리를 잡고 있다면 급격한 성장 시기에 1등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며 “종이에서 TV, 인터넷 영상으로, 그 다음에는 모바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이어 “접점만 달라질 뿐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는 그대로”라며 “모바일 다음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VR의 미래는 지금의 체험형 VR이 아니다. 단순하게 360도 영상을 보는 게 아니다. 영화 ‘매트릭스(1999년 작)’처럼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로 체험하는 VR이다. 1999년 이미 상상속 미래로 나왔지만 지금은 ‘불가능’으로 여겨지는 분야다. 그는 “VR 시장이 내년에 올 수도, 후년에 올 수도 있고 또 아니면 5년 뒤에 올 수 있다”며 “빅딩(Big Thing)인 것은 분명하다”고 자신했다.

VR 이전 검색, 데이터 분석, 1인미디어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 관점으로 접근했다. 지금 당장 비즈니스보다는 3년뒤 다가올 미래를 내다봤다. 해커 출신으로 인터넷 기술에 해박한 그의 식견이 밑바탕이었다.

◇검색, 콘텐츠, 데이터 분석까지..맞아 떨어진 예측

첫번째 창업은 보안이었다. 1996년 카이스트 선배와 공동 창업했다. 당시 노 창업가는 20대 초반의 해커였다. 보안망 뚫기가 특기였다. 포항공대와의 해킹 자존심 대결을 벌이다 구치소에 수감될 정도로 위험을 즐겼다. 보안기업 창업은 그에게 있어 자연스러웠다.

노정석 창업자의 창업과 입사 일지


첫 회사는 성공적으로 상장까지 했다. 20대 초반 달콤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두번째 그가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선 회사(2002년~2004년 1월)는 망했다. 닷컴버블 붕괴와 함께 무너졌다. 실패 이유에 대해 그는 “경영에 전혀 준비가안돼 있었다‘며 ”그때야 비로소 무식했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노 창업가는 SK텔레콤으로 옮긴다. 그의 첫 대기업 입사였다. 엑셀부터 워드 작성법까지 기업 업무에 필요한 실무를 이곳에서 배웠다. 이후 그는 학교 선배이자 멘토 격이었던 장병규 블루홀 의장의 러브콜을 받았다. 네오위즈 창업으로 성공한 장병규 의장과 그의 동료들이 만든 검색엔진 ‘첫눈’에 들어간 것. 노 창업자는 해외 사업 개발과 투자 유치 등을 담당했다.

그러나 첫눈에서의 생활은 3개월로 짧았다. 검색 시장에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라는 점을 간파한 것. 검색 비즈니스가 발전하면 결과값이 될 콘텐츠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 창업가는 2005년 11월 태터앤컴퍼니를 창업했다. 태터앤컴퍼니의 대표 브랜드는 ‘티스토리’였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 의존하지 않고 성공한 최초 블로그였다. 그는 “당시 검색이 굉장히 좋은 사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지만, 막상 검색할 좋은 정보가 부족했고, 있더라도 네이버나 다음 등 대형 포털 안에 갇혀 있었다”며 “포털 바깥에서 고급 콘텐츠를 만들면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한국어 콘텐츠가 네이버와 다음과 비교해 부족했던 구글이 2008년 9월 테터앤미디어를 인수했다.

노 창업가는 2010년 모바일 게임을 위한 데이터 분석 서비스 기업 ‘파이브락스(5Rocks)’를 창업했다. 그는 모바일 비즈니스가 곧 뜰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그의 예상대로 모바일 비즈니스는 급성장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은 사용자 데이터 분석이 절실했다. 파이브락스는 이들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2014년 8월 실리콘밸리 소재 모바일 광고 플랫폼 탭조이가 파이브락스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파이브락스는 한국과 일본의 모바일 게임사가 사용하는 모바일 게임 분석 운영도구가 됐다.

◇“똘똘한 또라이를 찾아라” 투자 성공 비결

그의 투자 성공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똘똘한 또라이’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자기 비즈니스가 바꿔놓을 미래를 광신적으로 믿는 이들이다.

노 창업가는 “실패하지 않는 1%는, 나만 옳다고 보는 방향이 미래와 맞았을 때 성공한다”며 “성공한 창업자들은 자기가 믿고 있는 미래를 목사님들이 설교하듯 끊임없이 얘기한다”고 말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뒤에 실제 그런 미래가 오면 그 사람은 주인공이 된다.

투자도 마찬가지. 노 창업자는 엔젤투자자로 일해왔던 그간의 경험을 반추했다. 그는 “똘똘한 또라이를 찾고 그 사람을 베팅하면 무조건 맞는다”며 “매우 확률 높은 게임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이 획일화되고 튀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인재는 매우 드물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갖는 삶의 자세론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노 창업가는 “비범한 일을 가끔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며 “그 안에서 재미를 찾고 어떻게서든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폭발한다”고 말했다.

최근 가상화폐 열풍에 대해서는 “진실하게 노력하는 이들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기로까지 비춰질 수 있지만 과거 벤처 붐 등을 짚어보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벤처 붐을 겪어가면서 그 안에서 흥망 성회를 봤다”며 “그때는 나빴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투자 덕에 진실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고 단언했다. 정말 괜찮은 사업가 하나 혹은 둘이라도 이 같은 기회를 통해 성장한다면 사회적으로 이익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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