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오늘은 원샷법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정식명칭은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약칭 기업활력법)인데요. 법은 지난 2월 12일 제정됐고 공포 후 6개월 지나서 시행키로 했기 때문에 13일부터 시행한 것입니다. 원샷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기업이 인수합병(M&A) 등 사업재편 과정에서 상법과 공정거래법·세법 등 각종 법률에서 정한 절차나 규제들을 이행해야하는데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면 한 번에 풀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원샷법의 주요내용은
원샷법은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법정관리처럼 부실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후 구조조정이 아닌 정상기업의 선제적이고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고, 총 39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내용이 좀 많습니다만 핵심적으로 이 법의 취지는 기업들이 자발적이고 신속하게 사업재편을 추진하도록 각종 절차나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인데요.
좀 더 쉽게 말해서 그동안 주주들의 의사를 물어야 했던 분할·합병 등 사업재편작업을 특별한 조건을 충족하면 주주총회 없이 회사 판단(이사회 결의)만으로 가능토록 하고 있습니다. 설령 주주총회를 열더라도 반대주주에게 지급할 보상(주식매수청구권)에 대해 회사가 준비할 기간을 좀 더 주는 내용도 있고요. 이러한 사업재편 과정에서 뒤따르는 각종 세금 납부 기간을 연장해주는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원샷법 적용대상 업종과 기업은
원샷법의 적용대상이 되려면 일단 ‘과잉공급’ 업종인지를 판단해야합니다. 과잉공급을 판단하는 기준을 최근 정부가 마련했는데요. 우선 최근 3년간의 상황이 중요합니다.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이 과거 10년 평균 영업이익률보다 15% 줄어든 업종이 1차 조건입니다. 그 다음으로 △공장가동률 감소 △제품·원재료 등의 재고율 증가 △비용 대비 제품의 가격변화율 둔화 △폐업·부도지수 같은 업종상황을 반영한 지표 등 5가지 보조지표가 있습니다. 이 보조지표도 최근 3년 치와 10년 치를 비교해서 최근 3년 치가 더 안 좋게 나타나면 과잉공급업종이라고 판단합니다.
대표적으로 조선·해운·철강업종을 볼 수 있는데요. KB투자증권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조선업종 영업이익률이 최근 10년간 3.6%인데 최근 3년간은 아예 적자(마이너스)가 났습니다. 일단 1차 조건을 충족하는 셈입니다. 해운업종도 마찬가지로 최근 3년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입니다. 철강업종은 10년 이익률이 8.2%인데 비해 최근 3년 이익률은 4.8%로 감소율이 40%가 넘으니까 이런 경우도 해당합니다.
KB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영업이익률 조건을 충족하는 업종은 예상보다 상당히 많습니다. 조선·해운·철강 뿐 아니라 석유화학·종이목재·건설·기계·항공·운송도 해당되고 심지어 그나마 좋다고 보는 음식료도 최근 3년 영업이익률 지표가 지난 10년 지표보다 좋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산업전반으로 대내외적인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 10년간 지표에는 금융위기 직전 호황일 때의 숫자가 포함돼 있어서 상대적으로 최근 3년지표보다 격차가 더 벌어지는 업종도 있습니다.
기업별로도 주식시장의 대표종목지수인 코스피200 소속기업들을 보면 200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93개가 과잉공급 업종에 들어가 있는 기업으로 집계됩니다. 물론 이 숫자는 영업이익률 조건만 따진 것이고 가동률·재고율 등 5가지 보조지표도 충족해야하기 때문에 실제 적용대상은 다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아무튼 생각보다는 잠재적인 대상이 많습니다.
◇동양물산 원샷법 적용시 금융지원 가능
다음 주에 동양물산(002900)기업과 한화케미칼이 원샷법과 관련 사업재편 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실질적으로 이들 기업이 원샷법 1·2호 기업이 되는 셈인데요.
우선 동양물산기업은 코스피상장사이고 트랙터·콤바인 같은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달 26일 또 다른 농기계회사인 국제종합기계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공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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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과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이 보유중인 국제종합기계 100%를 611억 원에 인수키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우선 이번 M&A는 기계업종간 거래인데요. 기계업종은 지난 10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이 5.5%인데 최근 3년간 이익률은 3.2%로 절반가까이 줄었으니까 정부 기준에 따르면 과잉공급업종이라고 볼 수 있고요.
동양물산기업도 이미 원샷법 적용을 받기 위해서 이러한 검토를 통해 사전준비를 마쳤습니다. 향후 주무부처와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원샷법 적용대상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앞으로 생산라인 정비 등 각종 투자때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산업은행이 사업재편용 전용자금 2조 7000억 원을 마련하는 등 총 8조70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습니다. 동양물산도 이러한 금융지원 혜택을 받게 된다면 아무래도 다른 자금을 융통하는 것보다는 낮은 금리를 내고 대출절차도 간소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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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케미칼 양도세 과세 이연 혜택
한화케미칼도 지난 5월에 울산에 있는 염소·가성소다(CA) 공장을 OCI계열 3유니드에 매각키로 했습니다. 양사 모두 상장사여서 당시 공시를 했습니다. 한화케미칼의 당시 공시 내용을 보면 공장을 매각하는 이유를 ‘주력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재편’이라고 밝혔습니다. 원샷법 취지와 부합하는 매각 목적입니다. 일부에선 한화케미칼이 원샷법 ‘소급적용’을 받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소급적용은 아닙니다.
한화케미칼의 공시화면을 처분예정일자가 11월 1일이라고 돼 있습니다. 매매계약 체결시점이 5월이고 거래종결은 11월이기 때문에 아직 진행 중인 거래인 셈입니다. 한화케미칼도 다음 주께 원샷법 심사를 받을 자료를 제출하고 심사 결과가 나오는 시점이 대략 10월 정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케미칼이 원샷법 지원대상이 되면 이번 울산공장 매각대금에 대한 양도차익 법인세를 4년간 이연 받습니다. 4년 뒤에 세금을 납부할 때도 3년 동안 분할 납부가 가능합니다. 또 신사업 진출 시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연구개발프로젝트 심사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화케미칼의 거래상대방인 유니드도 가성소다시장 공급과잉 해소 측면이라는 점에서 원샷법 적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무리된 거래는 원샷법 적용이 안 돼
기업이 원샷법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인수·합병(M&A)이나 유형자산 매각 등 해당 거래가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에 신청해야 합니다.
통상 M&A거래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최종 마무리까지는 몇 달 걸립니다. 정밀실사도 하고 가격조정도 하기 때문에 딜클로징 안에 원샷법 신청도 같이 해서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원샷법은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소급적용을 한다면 이미 끝난 거래까지 다 적용해줘야하고, 그렇게 되면 10년 전에 끝난 M&A도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급 적용은 없습니다.
◇삼성·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 영향은
원샷법에서는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요청기간이 20일에서 10일로 짧아지고 반면 회사가 이들 주식을 매입할 기간은 1개월에서 3개월(상장사)로 늘렸습니다.
주식매수청구권 요청기간이 10일로 단축된 것은 사실 큰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려고 하면 기간이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회사입장에선 주식매수청구권에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 부족한 자금을 끌어올 시간을 벌 수 있는 확실한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서 그동안 합병이 무산됐거나 합병 추진 가능성만 제기된 기업들이 실제 움직임에 나설지도 주목되는데요. 대표적으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한차례 합병이 무산됐었기 때문에 재추진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현대차그룹에서도 현대건설-엔지니어링은 사실 같은 업종이기 때문에 합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원샷법은 ‘경영권승계나 특수관계인의 지배구조 강화 목적’인 경우에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기업특혜법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 조항이 들어간 것입니다. 원샷법은 승인이후에도 사후 이행사항을 점검받아야하는데요, 사후 점검 과정에서도 이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하면 승인취소와 함께 과태료를 더욱 무겁게 물어야 합니다.
◇SK·LG·CJ 등 지주회사의 손자회사 주목
원샷법에는 지주회사 규제도 완화됩니다. 그동안 지주회사 체제에 있는 기업들은 가령 공동으로 자금을 마련해서 국내기업을 인수할 수 없었는데 이런 규제를 일시적으로 풀어줍니다. 원샷법이 적용되는 기간인 3년간 지주회사 규제에서 ‘열외’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M&A를 통한 사업재편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곳은 SK, LG, CJ 그룹입니다. 모두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체제인 그룹인 동시에 손자회사 단계에 굵직한 계열사가 포진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SK에는 SK하이닉스(000660), LG그룹에는 LG디스플레이(034220)와 LG이노텍(011070), CJ그룹에는 CJ대한통운(000120)이 있습니다. 이들 회사는 기존 같으면 다른 국내회사를 인수할 때 지분 100%를 매입해야했는데 원샷법을 통해 50%만 우선 매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용도 절감되면서 다양한 사업전략이 가능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등 철강·조선업종에 속한 기업들도 실적이 부진한 사업부문을 소규모 분할·합병 방식으로 통폐합하고 신사업 강화를 타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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