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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등 상권으로 꼽히는 명동 상가시장이 공실 공포에 휩싸였다. 중국인 관광객이라는 산토끼를 잡는데 열중한 나머지 내국인이라는 집토끼를 놓치면서다.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몇년 사이 명동 상권이 중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점포·골목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중국인 관광객의 수혜를 받는 곳은 극히 한정돼 있는데도 주변 점포의 임대료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이 여파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1층 상가도 임차인 못 구해 ‘텅텅’
명동은 한국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상권이다. 글로벌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웨이크필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명동은 65개국 330개 주요 상권 중 8번째로 임대료가 비쌌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기업들이 안테나숍(상품의 판매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메이커나 도매상이 직영하는 소매 점포) 등을 여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7일 찾은 명동에는 ‘공실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건물 전체가 장기간 공실 상태인 곳이 있는가 하면 핵심 알짜상권인 명동중앙로와 유네스코길에도 1층이 아닌 곳은 빈 점포가 적지 않았다.
명동4길의 한 빌딩은 반년 가까이 ‘공실 아닌 공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빌딩을 빌린 기업이 영업을 하지 못하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기업의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아 임대료만 내고 있는 상태로 안다”며 “해당 기업과 건물주도 새 임차인을 구하고 있지만 워낙 비싼 건물이라 상가 전체가 텅 빈 상태로 있다”고 말했다. 이 건물 상가 임대료는 보증금 10억원, 월세 1억 6000만원 선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명동중앙길과 유네스코길도 마찬가지다. 도로변과 인접한 1층 점포가 아닌 곳에서는 공실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 관계자는 “아무래도 관광객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층이나 1층이라도 하더라도 내부 상가의 경우 선호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1년 가까이 1층 상가가 비어 있는 S빌딩 관리인은 “임대료를 낮추면 들어올 의향이 있다는 문의 전화는 걸려오지만 건물주가 호가를 낮추지 않고 있다”며 “명동 건물주들은 자산가이고 자존심도 강해 공실 상태로 내버려둘 망정 임대료를 잘 내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상권 불황에 점포 권리금도 하락세
이렇다보니 명동 상가 임대료 상승세도 한풀 꺾였다. 부동산 정보업체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조사 자료를 보면 명동 중앙로와 유네스코길 상가 1층 99㎡짜리 점포의 평균 임대료는 2014년 1월 8725만원에서 2016년 1월 기준 8935만원으로 2%가량 올랐다. 명동 핵심 상권인데도 상가 임대료 오름폭이 최근 2년 간 물가상승률(1.6%) 수준에 머문 것이다. 안민석 에프알인베스트 연구원은 “2010년 초반과 비교하면 임대료 상승폭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명동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며 손익분기점을 넘는 가게가 줄면서 권리금도 하락 추세”라고 말했다. 명동 중앙로와 유네스코길 권리금은 최근 2년 새 8154만원에서 7966만원으로 떨어졌다.
가장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다름아닌 명동 상인들이다. 서울시와 명동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일 평균 이용객 수는 2011년 10만 9409명에서 2015년 8만 3357명으로 4년 사이에 23% 줄었다. 이제선 연세대 교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는데도 명동역을 거치는 유동인구가 줄었다는 것은 명동을 방문하는 내국인들이 더 많이 감소했다는 의미”라며 “내국인들이 찾지 않는 상권은 결국 외국인 관광객도 발걸음을 돌리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동희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서울시가 명동을 관광특구로 지정해놓고 정작 관리는 중구청에 맡기면서 체계적인 관리와 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명동이 서울시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라면 예산과 인력에서 앞서는 서울시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는 7월 ‘도심부 도시재생과 연계한 지속가능한 명동지역 발전 방안 수립용역’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춰 명동 상가 활성화 정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