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말하고 싶어했다. "제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경제철학이 대통령과 흡사했기 때문에 감(感) 없는 교수가 여기까지 온 겁니다.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대통령의 철학과 뜻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것 한 가지는 자부합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그는 이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경제철학의 코드를 공유해왔고,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의 골격을 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곧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경제계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따뜻한'이라는 단어를 자주 올렸다. 그는 MB노믹스가 경쟁과 성장 일변도로 비춰지는 데 대해 불만이 많은 듯 했다. "새 정부의 경제철학은 '따뜻한 시장경제'입니다. 그런데 왜 '따뜻한'이라는 핵심 포인트를 몰라줍니까. 그저 '시장경제' 부분만 부각되니 서운한 생각도 듭니다."
그는 국정기획수석실이 가장 먼저 내놓을 것이 '따뜻함'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뉴 스타트 2008'이라고 이름 붙인 패자 부활정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 영세 자영업자, 중소 상공인 등 경제·사회적 약자(弱者)를 회생시키기 위한 종합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신용불량자 구제 공약 등을 놓고 일부에선 '정통 보수가 아니다'는 비판도 하더군요.
"심지어 저를 보고 좌파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한 시장주의자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요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입니다. 실용주의로 간다는 것, 낡은 이념을 벗어난다는 것은 진보냐 보수냐, 우익이냐 좌익이냐의 문제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곽승준 수석은 묵직한 컴퓨터 가방을 들고 약속 장소로 들어섰다. 속을 들여다보니 노트북 컴퓨터와 보고서며 서류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항상 들고 다닌다고 했다. 노트북 컴퓨터 색깔은 진한 빨간색이었다.
그는 48세의 젊은 나이에 권력의 핵심에 들어갔지만, 취향은 나이보다 더 젊은 듯하다. IT기기 신제품이 나오면 무조건 사고 보는 '얼리 어댑터(초기 수용자)'이고, 휴대폰 벨소리엔 힙합 노래를 깔았다. 말투는 자신감에 넘쳤지만, 자기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려는 '겸손의 처세술'도 엿보였다.
그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경쟁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면서 일 년 전쯤 선거 캠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한번은 회의를 하는데 한 교수가 '복지는 경제 성장에 도움이 안됩니다'라고 했어요. 그러자 대통령은 '우리가 정권을 잡으려는 것은 못사는 사람, 사회적 약자, 패자부활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 위한 것이다'라고 정색을 하고 말씀하더군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프라이빗(내부)한 회의였는데도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다르다
―'따뜻함'을 몰라준다고 하셨는데, 새 정부가 친기업적인 모습을 강조한 결과 '따뜻함'이 묻혀버린 것 아닌가요.
"대기업을 '프렌들리(친화적)' 하게 대하는 것은 대기업이 풀려야 약자(弱者)인 중소기업도 숨통이 트이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의 60%가 납품 등으로 대기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중소기업 하는 분들도 이것을 잘 압니다. 지난 대선 때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후보자 지지도를 조사하니 작은 기업일수록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새 정부가 생각하는 성장과 복지의 균형점은 어디입니까.
"대기업이나 잘사는 사람들은 지원도 할 필요가 없고, 규제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내버려둬서 맘대로 뛰도록 하고 대신 투명하게 세금을 내도록 하고 세금 낸 것에 대해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일자리 창출하는 기업은 영웅 대접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장경제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보듬어 다시 시장 경제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바로 정부의 몫입니다. 이게 새 정부가 추진하는 '능동적 복지'입니다."
―앞으로 중장기 과제들을 맡게 될 텐데 최우선 과제로는 어떤 것을 꼽겠습니까.
"역시 규제 개혁입니다. 피부에 와 닿게 할 겁니다.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서 일자리 늘릴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경제 살리기의 첫 번째 단추는 규제 완화입니다."
―역대 모든 정부들이 규제 개혁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규제는 여전합니다.
"우리는 하루 이틀 준비해 온 것이 아니라 2~3년에 걸쳐, 정권 출범 전부터 준비해왔습니다. 사전 준비 철저히 했고,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고려했습니다. 이번만은, 이명박 정부만은 다를 겁니다."
―'전봇대'처럼 이런 것까지 있나 하고 생각하는 규제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지금부터 공장 하나 지으려고 하면 현 정부 임기 끝날 때까지 못 짓습니다. 인허가에 5년, 6년이 걸립니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부산, 울산 근처에도 공장 못 짓습니다. 환경, 교통, 문화재 등 별별 규제가 다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투자자문사 설립 신청 후 2주 안에 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을 만들어 놓으면 공무원들이 아예 신청 서류접수를 안 받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현장을 가보라고 하십니다. 서울에서 만든 보고서는 (대통령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결국 규제를 직접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할 텐데요.
"우리나라 직업 관료들 굉장히 우수합니다. 미국에선 월스트리트(금융가)에 못 가는 사람들이 공무원을 하지만, 우리는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공무원을 합니다. 그동안 정부가 민간의 발목을 잡았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잘못된 국정 철학이 우수한 관료들의 발목을 잡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관료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겁니다."
■소비자의 관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경제수석은 60대입니다. 경제 정책의 감각 등에서 세대 차이를 느끼지는 않습니까.
"나이 차이는 문제가 안됩니다. 강 장관님하고 지난 2년 동안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인수위에서 일을 할 때쯤 되니 서로 80%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더군요. 나머지 20%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만,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빤히 압니다. 제가 개혁적으로 치고 나가는 부분이 어떤 점에서는 안정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 대화하고 보완하는 관계라 세대차 느끼고 그런 것 없습니다."
―국정에 참여하게 됐으니 큰 흐름을 보는 정치적 센스도 필요할 텐데 그런 점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작년 11월까지 고려대 학보사 주간을 6년간 했습니다. 학보를 만들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기사를 일간 신문들이 인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중립적으로 썼다고 생각하는데 항의 전화가 오기도 하더군요. '아, 만드는 내 생각과 (신문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구나. 공급자 기준이 아니고 소비자 기준으로 봐야 하는구나' 이런 걸 배웠습니다."
―그때 소비자 시각을 익혔군요.
"고대 학보사엔 학생 기자가 40명인데 저는 이 친구들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같이 뒹굴고 호흡하고 지냈습니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 빨리 보내기 시합도 하고 그렇게 함께 지냈습니다. 내 나이에 랩을 부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겁니다. 근데 학생들하고 노래방 가서 '삼포로 가는 길' 부른다고 치면 다음부터는 저와 같이 가려 하겠습니까. 노래는 듣는 사람도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동산값은 현상 유지로 끝내지 않는다
―종합부동산세 1가구 1주택자 감면은 대선 공약인데 강만수 장관은 서두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저도 강 장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부동산 안정이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이 대통령 당선 직후 'MB효과'라고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기도 했습니다만.
"대통령은 현재 집값이 굉장히 높다고,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강남도 높지만, 수도권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생각하시는 분들, 아마 굉장히 손해 많이 보실 겁니다."
―시장(市場)이 이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착각하고 있는 건가요.
"부동산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해보니 시장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가는 올라가는 곳도 있지만, 매매는 잘되지 않습니다."
―부동산 값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낮추겠다는 의지로 들립니다
"맞습니다. 낮추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방법은 쓰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공급을 늘리고, 공급도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형태로 지어주는 방식으로 제대로 늘릴 겁니다."
―노무현 정부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세금을 갖고 투기를 잡겠다고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지는 않겠죠.
"지금 몇 가지 시장에 어긋나는 정책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한꺼번에 완화하지는 않을 겁니다. 부동산에 관해서는 안정이 기본입니다. 앞으로 부동산 정책은 세금보다는 주택대출 규제 등 금융을 통해서 컨트롤할 생각입니다."
■소망교회 루머가 나돈 까닭
―대통령이 다니는 소망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죠.
"제가 소망교회 다니게 생겼나 봐요.(웃음) 처음엔 그런 얘기가 나돌아도 대수롭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퍼져서 이동관 대변인에게 상의하니 대변인도 내가 소망교회 다니는 걸로 알고 있더군요. 이 대변인이 '정식으로 해명하자'고 해서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전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습니까.
"저희 부친이 현대그룹에서 40년간 근무하셨고, 계열사 사장도 지냈습니다. 어릴 때는 '이명박 회장님'을 가끔씩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에 세미나 등에서 고려대 교수로 다시 뵙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못 알아보셨죠. 나중에 말씀을 드리니 '아, 그때 걔가 너였냐. 많이 컸다' 이러시더군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참모 역할을 했죠.
"2004년부터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이 '일요일에 공부를 하자'고 하셨어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정도 경제, 외교 등 모든 방면에 걸쳐서 교수나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토론을 하는 겁니다. 제가 전문가들을 모셔오는 역할을 했죠. 그때 이 대통령은 맹렬히 (대통령) 공부를 했고, 저도 엄청 공부가 됐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 수석 임명장을 받는 순간에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감회라기보다는 선거대책위, 인수위에서 했던 일들을 연장해서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속으로 '(정책들 중에서) 요거 요거는 아직 조정이 안 끝났고, 요건 굉장히 조심해야 하고···' 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솔직히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감회보다 일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곽승준은 누구
이명박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그건 아닌데료"라고 말할 만큼 자유 분방하고 저돌적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고릴라'(본인 설명).
한 때는 이종(異種) 격투기에 빠져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국내 이종 격투기 선수와 연습을 하기도 했다. 2001년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정책 참모로 일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정책 공약을 총괄하는 간사 역할을 맡았다. 금융위원회 설립, 산업은행 민영화, 부동산 정책을 주도하는 등 거의 모든 정책에 관여했다. 누나가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동생이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인 교수 집안이기도 하다.
▲대구(48) ▲고려대 경제학과 ▲미국 밴더빌트대 경제학 박사 ▲ 고려대 정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