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서 5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카페를 운영 중인 황모(55) 씨는 황당하다고 했다. 그는 “인건비가 해마다 올라 키오스크를 구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데 공유받은 내용이 없다”고 했다. 용산구에서 3층짜리 카페를 운영하는 이학근(53) 씨도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 소식을 듣고는 “구청에서 따로 공문도 없었고 오늘 처음 듣는다”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면 미리 알려주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황씨와 이씨 모두 매장 안에 일반 키오스크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시행 한 달도 안남았는데…현장은 ‘모르쇠’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 설치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미흡한 홍보로 자영업자들의 위법사례만 늘어나 혼란이 불가피하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뿐만 아니라 키오스크 중개 판매업자도 해당 법의 시행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키오스크 판매업자 A씨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매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며 “아직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납품은 이뤄지지 않았고 문의도 없다”고 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및 동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오는 28일부터 50㎡(15평)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키오스크를 신규 도입할 때에는 사회적 약자가 이용 가능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해야 한다. 기존에 일반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사업장도 내년 1월28일까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로 교체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시정명령을 거쳐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도입에 관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키오스크를 활용하는 소상공 40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소상공인 키오스크 활용현황 및 정책발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5.6%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와 관련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현장의 인식 부족은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에 또 다른 어려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오는 28일 이전에 키오스크를 신규 도입하는 소상공인은 일반 키오스크를 도입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개정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새로 도입한 일반 키오스크를 1년 후에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로 교체해야 해서 이중으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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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해당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실제 사업장에 법적 제재를 가할 수단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이 감지할 수 있도록 다른 바닥과 구분되는 재질의 바닥재 설치 △무인정보단말기 전면에 점자블록 또는 음성안내장치 설치 등 다수의 기준을 과기정통부의 고시를 준수하면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기준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이를 점검하고 시정하는 주체가 모호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의 기술 기준을 충족하면 검증서를 발급한다”며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조치이므로 복지부 소관”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과기정통부의 기준을 준수했는지 여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판단하는 것”이라며 “2023년 제도 시행에 따른 순회 설명회를 했지만 올해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우리는 권고 수위나 차별 정도를 판정하는 것이지 키오스크가 기술기준을 준수했는지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관련 주체들이 점검 책임을 미루는 탓에 장애인의 생활권 보장을 위한 제정한 기준이 명분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유빈 법무법인 교연 변호사는 “어떤 제도가 실효성 있게 시행되려면 관련 기관들의 유기적인 협업이 중요하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게 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절차가 모호해질 뿐만 아니라 제도의 효용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