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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고인 A씨는 2009년부터 대부업자 피해자 B씨에게 차량을 담보로 제공하고 소액대출을 받으면서 서로 알게 됐다. A씨는 2011년 12월 서울 구로구에 있는 B씨 사무실에서 “수익성 좋은 물류사업이 있다”며 2013년 1월까지 B씨로부터 자신 명의의 계좌로 총 24억2100만원을 송금 받아 편취했다. A씨는 변제할 의사나 능력 없이 B씨에게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거짓말해 투자금을 편취했다는 특가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A씨 측은 “B씨로부터 돈을 송금받을 때 차량구입자금 용도로 빌린다고 한 사실이 없고, 수익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으므로 기망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B씨에 대한 편취의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같은 무죄 평결을 채택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 이외에 객관적으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돈을 받을 당시 차량구입자금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했다는 점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기망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은 추가 증인 신문 등을 거쳐 1심 판결을 뒤집고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1심의 판단이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의 만장일치에 따른 평결을 그대로 채택한 것이기는 하나, 1심 및 2심이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피고인이 화물트럭을 구입한 후 지입차량 관련 사업을 해 수익금을 주겠다고 피해자를 기망해 피해자로부터 돈을 편취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대법 “2심 추가 증거조사 부적절…법리 오해”
대법원은 이를 다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도입한 배경과 취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의미와 정신, 형사재판 항소심 심급구조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내린 무죄 평결을 1심 재판부가 받아들인 경우라면 2심의 추가 증거조사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2심에서 부수적·지엽적 사정들에 주목해 의미를 크게 둔 나머지 1심 법원의 판단을 쉽게 뒤집는다면, 그로써 증거의 취사 및 사실의 인정에 관한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은 채 앞서 제시한 법리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1심 결론을 뒤집은 2심의 판단에 대해 “추가적인 증거조사는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고, 그러한 증거조사를 통해 배심원이 참여한 1심 법원의 증거가치 판단 및 사실인정에 관한 판단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2심 판단에는 국민참여재판 항소심의 심리·증거조사에 관한 법리,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는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1심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돼 만장일치 무죄평결을 받아들여 무죄판결을 선고한 경우, 2심에서 기록만 검토해 유죄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국민참여재판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찍이 정립된 법리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항소심에서 추가로 증거조사해 결론을 바꾸는 것도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함으로써 진일보한 판례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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