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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입니다. 일할 사람을 부족해질 거고,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가 나올 겁니다. 그렇다 보니 정부와 각계 전문가가 현 상황의 심각성과 그 원인, 해법을 논합니다. 요즘 정치권에선 인구청 설립 얘길 합니다. 제가 속한 이데일리의 작년 연중 최대 행사 전략포럼 주제도 인구였습니다.
오늘은 사회적 담론은 뒤로하고, 저 개인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40대의 보통 맞벌이 근로자 가정 시점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대해, 최근 둘째를 포기하고 만 3세 첫째 아이만 키우기로 한 결정을 공유해보겠습니다.
◇돈 때문만은 아니지만…발목 잡는 건 결국 돈
절대적인 돈의 액수가 출산율 저하의 이유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집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1920년대생 조부모 세대, 1950년대생 부모 세대보다 1980년대생인 저희가 더 윤택하게 자랐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출산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통계청 합계출산율을 보면 1973년까지 4명 이상(4.07명)이던 게 1984년 2명 미만(1.74명)으로 떨어진 이래 꾸준히 줄어 2022년 0.78명이 됐습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론 0.7명선도 무너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저희 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부모는 6남매, 부모는 2형제였는데, 저는 한 자녀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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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 능력, 좋은 직장을 가려는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제 이하 세대 대부분이 겪는 현실입니다. 지난해 평균 첫 결혼 연령은 남자 기준 33.7세(여 31.3세)로 10년 전 32.2세(여 29.6세)보다 1.5세 늘었습니다. 관련 조사를 처음 시행한 1990년 기준 초혼 연령은 남 27.8세, 여 24.8세였습니다. 30여년 새 6세 가량이 늦어진 겁니다.
어찌저찌 결혼 후 애를 낳으면 현실 육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험상 출산휴가, 육아수당 등등 정부 지원도 많이 받았지만, 나가는 돈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증가 속도도 빨랐습니다.
제 가계부의 육아 지출 항목은 출산을 준비하던 해부터 만 3세가 될 때까지 5년 동안 8배 늘었습니다. 제 급여 중 보육료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출산 준비 땐 6.6%였으나 지난해 47.0%가 됐습니다. 번 돈의 절반은 애를 키우는 데 나간다는 겁니다. 맞벌이인 만큼 실제론 전체 가계수입에서의 비중은 4분의 1가량이겠지만, 그래도 만만찮은 비용입니다. 아이 있는 집은 피할 수 없는 층간소음 방지 매트 같은 사실상의 보육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비용 절감 이론상 가능하지만…현실선 불가
물론 줄일 여지는 있습니다. 사실 세세히 따져보면 안 써도 될 돈도 많이 씁니다. 어린이집·유치원에서 하는 특별활동도 의무는 아닙니다. 예전 학교처럼 뭘 안 한다고 혼나지 않습니다. 방과 후 실내 체육시설에 다니는 대신 집 앞 놀이터에 가도 됩니다. 주말에 각종 체험을 안 해도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부가 ‘아이를 (남들보다 못하더라도) 적당히 키우자’는 의사결정에 합의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적게 버는 사람도 육아 비용 부담을 크게 느끼는 이유겠죠. 애를 낳는 게 당연했던 이전과 달리, 남들보다 못하게 키울 거라면 아예 낳지 않는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한 명뿐인 아이를 ‘부족함 없이’ 키우려다 보니, 맞벌이해도 돈이 계획대로 모이질 않습니다. 보통의 40대 직장인이 그러하듯 저희도 10년 이후의 사회적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데, 자녀가 이르면 초등학교, 늦어도 중·고교에 다닐 무렵 급격한 수입 감소를 경험할 가능성이 큰데, 그때를 대비해 돈을 열심히 모아놔야 한다는 걸 아는데, 이게 아는 만큼 잘 안 됩니다.
그저 지금 당장은 부족하지 않으니, 아이도 최대한 부족함 없이 키우려 하게 됩니다. 마음 같아선 아끼고 또 아껴서 아이가 컸을 때 방 하나 따로 줄 수 있게 집을 넓히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안 됩니다. 10년 후 자녀를 부족함 없이 키우는 건 둘째 치고, 제가 노인이 됐을 때 현 수준의 삶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더 나아가 노인 빈곤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합니다. 물론 열심히만 산다면 아마도 저와 제 자녀의 삶은 큰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여러 고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끝에 저희 집은 결국 둘째를 낳기를 고민 끝에 포기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눈앞의 현금 지원보단…더 여유 있는 사회 만들어지길
이론상 제가, 우리 세대가 (조)부모 세대 때와 같은 ‘조건 없는 희생’을 전제한다면 다시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는 것도 이론상 가능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가치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 이면엔 늘 이런 현실적 고민이 뒤따릅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담론을 보고 있노라면 현 초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큰 틀에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과 함께 청년들이 1~2년이라도 더 빨리 경제적으로 안정할 수 있게 하고, 각 가정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것 말이죠. 출산 가정에 현금 지원책을 내놓는 건 쉬운 해법이지만 이것만으론 정답이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현실 부모로선 정부가 아무리 많은 걸 지원해도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를 만족시키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할 테니까요.
사회 전체가 한두 세대에 걸친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를 기대해봅니다. 무엇보다 서로가 좀 더 여유를 갖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 봅니다. 제 자녀 세대 때부턴 우리가 경험한 10대 때부터의 불필요한 출혈 경쟁 없이, 결혼·출산 후에도 지금보다는 경제적 부담이나 각종 사회적 부담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