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이 날씨를 맞힌 것이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최근 급변하는 기상환경을 고려하면 쉽게 얻을 결과물은 아니라는 것이 기상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중부지방에 ‘물 폭탄’이 떨어진 지난 사흘 쪽잠으로 버티며 비상근무를 막 마치고 출근한 김성묵(사진) 기상청 재해기상대응팀장을 1일 이데일리가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기상청사에 인터뷰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나라는 기상예측이 쉽지 않은 국가다. 여기에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추가됐다.
행시 53기로 기상청에 입사해 예보국에서 잔뼈가 굵은 김 팀장은 손꼽히는 예보통으로, 2018년 예보국 총괄예보관에서 기상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 오클라호마 국가기상센터로 2년간 파견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뒤 예보국 예보분석팀장을 거쳐 현재 재해대응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 박민영 배우가 맡아 연기한 총괄예보관의 현실판 인물로,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예보관들에게 위기기상 인자를 짚어주며 기상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고 나침반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 팀장은 “북태평양고기압과 오호츠크해고기압이 만나서 정체전선이 발달하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교과서의 설명은 수정돼야 한다”며 “장마예측은 이제 ‘일대 일’ 기단의 만남이 아닌 ‘17대 북태평양고기압 1’간 만들어진 전선(戰線)에서 벌어지는 일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못했다. 3일 내내 예보국장, 예보정책과장님의 옷이 똑같다. 화장실에서 머리 감고, 양말도 없어서 오늘 새벽엔 맨발로 회의했다. 3~6시간 간격으로 전국 지방청 예보국을 연결하는 화상회의를 한다. 이렇게 비상근무 1급이 걸리면 예보국뿐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도 총동원되고 잠은 쪽잠으로 버틴다.
◇28일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는데
-전형적인 장마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하고 수축하는 동안 인근 정체전선의 이동으로 다소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정체전선상에 저기압이 자주 생기면서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상황이 그랬다. 저기압이 정체전선을 왜곡하기 때문인데, 예상보다 저기압이 더 발달하면서 정체전선의 기울기가 남북으로 더 가팔라져 수도권을 거쳐 곧바로 전라권으로 이동했다. 29일은 정체전선이 단순 확장해 본체가 올라왔기 때문에 지속성과 많은 양의 강수를 예측했던 것이다.
△집중호우 가능성과 예상강수량까지 맞췄는데, 예상강수량은 어떻게 정하나
-들어오는 수증기량과 온도를 따져 물로 떨어질 때의 양으로 환산한다. 비의 요인에 따라 28~29일, 29~30일로 크게 두 개로 나눴고, 사흘간 누적 강수량을 100~200mm, 많은 곳 300mm 이상으로 예상했다. 다만 강수량을 칼로 자른 듯 일별 구분은 어렵다. 북태평양 가장자리에 우리나라가 놓여 있어 재료는 계속 공급되는 상황이었기에 이 기간 누적 양으로만 예측이 나간 것이다.
△여름 강수 맞추기 어려운 이유
-여름엔 다른 계절에 비해 대기가 따뜻하고, 수증기량이 많다. 공기는 물 분자를 머금으면 가벼워진다. 산맥 등 지형적 특성이나 북측 찬 공기의 남하, 지표면의 가열 등의 요인을 만나면 더 잘 반응한다. 즉 건조공기보다 여름의 공기는 돌변할 잠재력이 커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날씨 예측이 유독 어렵다는데
-수분과 지형 때문이다. 바다로 둘러싸여 수분공급원이 충분하고, 좁은 지형이면서 70% 이상이 산지다. 수분을 머금은 기류가 충돌하고 상승하며 비구름대가 생길 여지가 많은 것이다. 팝콘과 비유하면 팬에 올려진 옥수수 알갱이 중 어느 알갱이가 먼저 터질지를 맞추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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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렇다. 옛날엔 우리나라가 여러 기단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에 우리 교과서는 날씨변화를 기단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체전선상 발달하는 저기압이 상당히 많아졌다. 전통적 형태의 동서로 긴 형태로 장마전선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굽이치는 형태다. 지역별 지속시간이나 양을 예측하는 것이 더 어렵다. 기후변화 영향 등으로 공기 자체가 뜨겁고 습해졌다. 평상시 보기 힘든 광경도 자주 목격하고 있다.
△교과서를 새로 써야되나
-중국 대륙쪽 역할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는 정체전선이 기단과 기단간 ‘1대 1’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17대 1’로 싸우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 기상이론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을 주로 신경을 썼다면, 앞으로는 중국 티베트고원을 비롯해 전 지구적 대류 흐름을 분석해야 할 것 같다.
△올 여름도 다이나믹할까
-그렇다. 점점 극단적으로 간다. 고위도와 저위도간 온도차가 극명해지면서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제트기류도 굽이치며 파동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북미나 유럽에선 폭염에 시달리고. 찬 공기가 내려온 곳은 호우에 시달리는 것이다. 기온이 상승할 때마다 대기가 포함할 수 있는 물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공기가 머금는 수분이 많아지고, 파동에 따른 패턴의 변화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극값(최대값 또는 최소값)이 너무 자주 경신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