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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의 트렌드J]최대 호황기에도 '빌려 쓰고 아껴 쓰고'

최은영 기자I 2019.06.07 05:11:00
[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1970~80년대 국내에서 해외여행으로 큰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던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에 다녀오는 분들마다 유명 전자상가에 들러 한 손에는 전기밥솥, 한 손
에는 워크맨을 사갖고 오는 게 필수 코스였다. 그 당시만 해도 전 세계 소비자들의 지갑을 싹쓸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경제는 당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필자가 1980년대 말 처음 일본에 가서 본 현지 소비자들의 실상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환상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모든 상품을 100엔(약 1090원)에 판매하는 파격적인 초저가 전문점이 즐비했다. 로컬 슈퍼마켓에서 발행하는 할인쿠폰을 구하기 위해 일간지를 구독하는 ‘신지식인’ 독자도 있었다. 1엔, 2엔 거스름돈을 살뜰하게 챙겨 받는 등 초저가 지상주의 소비자들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소비 정신이 1990년대 이후 약 25년간 어두운 불황의 터널을 뚫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유통사들은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최근에도 저가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극초저가 렌탈서비스가 인기다.

그 중 하나가 ‘미 라이트(Me Light)’라는 서비스다. 대당 월 100엔(1090원)을 내면 LED 형광등을 대여해주는 게 주 내용이다. 100엔 안에는 설치비와 고장수리비도 포함돼 있다. 렌탈 기간은 2년인데, 서비스 해지 이후에는 ‘리마켓’ 시스템을 통해 동남아 등 외국에 되판다. 다량으로 설치해도 초기 비용부담이 없어 소비자에게 이득일뿐더러 자원낭비를 최소화해 환경 보호에도 한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LED 장치의 절전 효과와 수명이 오래간다는 두 가지 장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신 개념 초저가 서비스다.

또 한 가지 이색 서비스로 하루에 70엔으로 우산을 빌려 쓰는 렌탈 상품이 등장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명 ‘아이카사’라는 서비스인데 1일 70엔으로 어디서나 우산을 빌리고 반납하는 게 주 내용이다. 시부야역 인근 50개소를 시작으로 현재 도쿄도 내 120개 거점이 있으며 역내 관광안내소, 가라오케, 영화관 등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비닐우산 최저 균일가가 개당 100엔인데 이보다 저렴하게 책정하기 위해 70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제대로 된 튼튼한 우산을 제공한다는 이 서비스의 등장 배경은 ‘탈 플라스틱’ 환경운동에 있다. 비닐우산 1개에선 비닐봉투 20장 분량의 이산화탄소(CO2)가 배출되는데, 일순간 필요에 의해 사고팔고 버려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기획된 서비스라고 한다.

비닐우산을 판매하는 로손이라는 편의점도 이 서비스에 동참하고 있어서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으며 장마철을 앞두고 이달 중 렌탈 장소가 3배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렇듯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최대 호황기임에도 불구하고 가격만 저렴한 단순 저가 상품이 아니라 그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하는 극 초저가 상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국내 경제 뉴스를 보면 극심한 불황이 오고 있다는데 왜 내가 지불하는 웬만한 물건과 서비스 가격은 좀처럼 내릴 생각을 않는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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