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낙지 北오징어]또다시 '벼랑 끝 전술' 꺼낸 김정은

김영환 기자I 2019.03.17 07:00:00
[편집자주] 남한에서 낙지라고 부르는 그것을 북쪽에서는 오징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북한에서 낙지라고 부르는 그것을 우리는 오징어라고 말하죠.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남북이 분단 이후 제한적 교류 속에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갖다보니 벌어진 씁쓸한 현실입니다.

분단 이후 70년 가까이를 따로 살면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말하는 것이 비단 낙지와 오징어 뿐일까요. 남북이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사소한 오해만이라도 풀어보고자 북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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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과 북측 관계자들이 평양에서 각국 외교관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 부상은 이날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북한이 다시금 ‘벼랑 끝 전술’을 꺼내들었습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앞세워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가능성 카드를 꺼내든 것인데요, 최 부상은 하노이 이후 북한의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김정을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발표할 것이라고 하면서 단순한 ‘으름장’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인 데에는 강력한 의미가 있습니다. 최 부상의 ‘발언’과는 다르게, 김 위원장의 ‘발언’은 돌이킬 수 없는 선언이 되는 것이죠. 김 위원장이 만약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시계는 다시 몇 년을 뒤로 후퇴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김 위원장의 ‘성명’은 오는 4월초 개최가 유력하게 예상되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에서 나올 것으로 점쳐집니다. 북한은 최근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죠. ‘김정은 2기’의 준비를 마친 셈입니다. 김 위원장이 이 회의에서 대미 메시지를 발신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최 부상은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면서 김 위원장의 성명을 예고한 것은 미국에 일종의 말미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협상판을 박차고 나설 수도 있으니 미국의 생각을 밝히라’고 요구에 나선 것이죠. 북미 간 협상의 역사에서 지루하게 반복됐던 ‘벼랑 끝 전술’입니다.

벼랑 끝 전술의 기원은 지난 1956년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애들레이 스티븐슨 민주당 후보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Brinkmanship’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습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이 인터뷰에서 ‘go to the brink(벼랑 끝까지 가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brink’에 ‘-man-ship’을 덧대 벼랑 끝 전술이라는 말을 만든 거죠.

전쟁 목전까지 갈 것처럼 긴장감을 높여 상대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전술을 의미합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듯 시늉을 해서 상대가 물러나게끔 하는 것이죠. 북한의 판단으로는 미국 역시 북한과의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판을 깨려는 것처럼 시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속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갈등 과정에서 벼랑 끝 전술을 활용한 역사는 수없이 많습니다.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을 특별사찰하겠다고 결의안을 채택하자 북한은 NPT(핵비확산조약) 탈퇴 카드를 꺼냈습니다. 2002년에도 미국이 중유 공급을 중단하자 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는 2003년 또다시 NPT 탈퇴선언을 하면서 시험용 원자로를 가동시켰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금을 묶기 위해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계좌를 동결하자 국제사회를 충격으로 던져넣었던 2006년 1차 핵실험도 벼랑 끝 전술의 한 모습입니다. 여기에 2009년 6자회담이 지지부진하자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면서 핵을 미 본토에까지 나를 수 있는 방안에 매진했죠. 모두 북한이 미국을 자극한 벼랑 끝 전술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전략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는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협상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북한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펼쳐서 완승을 거뒀던 바도 있습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코 앞에 두고 북한이 회담 준비에 몽니를 부리자 ‘회담 취소’라는 카드를 꺼내 북한의 백기를 받아냈었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최 부상과 김계관 외부성 부상을 꼭 집어 문제 삼았습니다. 최 부상은 “대화 구걸은 안 한다”고 했고 김 부상도 “미국이 일방적인 핵 포기를 강요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서에 드러난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으로 봤을 때 지금 회담 개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정조준했죠.

이번에는 최 부상이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을 특정했습니다. 최 부상은 “그들은 불신과 적대적인 회담 분위기를 조성했다”며 “건설적인 협상을 만들기 위한 두 정상의 노력을 방해했다”고 비난했죠.

최후통첩의 모양새를 띠면서도 마지막에 여지를 남긴 것 역시 비슷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 메시지에서 “정상회담을 해야겠다고 마음이 바뀐다면 망설이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써 달라”고 했습니다. 최 부상 역시 “두 최고지도자 간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이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했죠.

미국의 벼랑 끝 전술에 손을 들었던 북한이 매우 흡사한 형태로 미국에 다시금 벼랑 끝 전술을 활용한 셈입니다. 미국 내 비토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재선을 위해서는 북핵 문제 해결이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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