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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자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부(富)의 효과가 감소하고 소비가 부진해지면서 경기가 더 위축되는 ‘자산 디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가뜩이나 투자는 줄고 고용지표도 악화하는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활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자산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경기 위축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겪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모두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나흘 연속 급락 장세를 연출하면서 코스피는 작년 상승분을 모조리 반납하고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갇혀있던 박스권 수준까지 내려갔다.
주택시장도 지방은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든 지 오래다. 특히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울산 아파트값은 올 들어 8%나 빠졌다. 서울 아파트은 9·13 부동산 대책 여파로 강남3구(서초·강남·송파구)를 시작으로 조정 국면에 접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현 상황을 자산 디플레이션으로 진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시는 이미 고점 대비 20% 이상 빠져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한 상태인데다 미·중 무역 분쟁이나 대내외 금리 상승, 기업 실적 악화, 경기 부진 등의 요인을 감안할 때 한동안 약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다. 지방 집값은 조선업 등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 전에는 반등할 유인을 찾기 어렵고 서울 집값 역시 9.13 대책으로 대출이 막히고 보유세(종부세)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거래 위축과 호가 하락이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저금리 기조로 자산 가격이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상승한 측면이 강하다”며 “버블은 어떤 계기가 생기면 터지기 마련인데 지금이 그 단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자산 가격 하락은 과잉 유동성으로 형성된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문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급격하게 자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경제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 특히 서울 집값 상승에는 금융권 대출이 수반됐고 신용 거래를 통한 주식 투자도 많았던 만큼 자산가격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 금융회사 부실과 신용 경색이 발생해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산 가격 하락으로 ‘역(逆) 부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투자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자산 디플레이션에 미리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자산 디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하기 전에 주택시장이나 금융시장에 적용한 미시적인 규제가 너무 강한 것은 아닌지, 완화할 부분은 없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거시경제의 흐름이 너무 위축되거나 물가가 오랜 기간 낮은 수준을 유지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