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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의 한 은행 직원은 9일 오후 기자에게 자기 통장까지 보여주며 3년 만기 ELS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주식 투자 경험이 있긴 하지만 ELS엔 한 번도 투자해 본 적이 없는 기자의 투자 성향조차 분석하지 않았다. 당연히 투자부적합자에게 ELS 판매시 적용되는 녹취 의무나 숙려 기간 등도 고지하지 않았다.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 직원은 “1차 평가기간에 지수가 (기준가의) 90% 밑으로 내려가도 85%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조기 상환되는 쿠폰 찬스가 두 번이나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의 불완전판매와 H지수 폭락은 2015년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불안’ 사태를 연상케 한다. ELS 발행액도 그 때 이후 올해 상반기 또 다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그만큼 ELS는 투자 가치가 높은 상품일까. 증시 횡보장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단 강점이 있지만 ‘이익은 한정, 손실은 무한대’라는 ELS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증권사는 ELS로 자금을 조달하고 은행은 이를 판매해 비교적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ELS는 고위험 상품임에도 대중화돼 있어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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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투자 성향이 안정적이거나 70세 이상의 투자자에게 ELS를 판매할 때엔 녹취 의무나 숙려 기간 등을 두도록 규제했으나 실제 판매 과정에선 이런 의무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 신탁을 통해 판매되는 ELS의 40% 가량이 60세 이상 투자자이고, 3분의 1 가량은 신규 투자자다. 금융당국이 반복적으로 국민 재테크 상품에 경고장을 드는 이유는 ELS가 원금 보장이 안 되는 ‘고위험 상품’인데도 이런 사실이 제대로 고지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ELS는 증권사가 신용을 보증해 발행하는 상품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과 함께 증권사의 대표적인 자금 조달 수단이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의 일부를 기초자산의 선물·옵션을 매매해 자체 헷지하고 나머지는 국채 등에 투자한다. 3월말 ELS 평가액의 90% 가까이가 국공채나 A등급 이상의 우량 채권, 예금 등에 투자돼 있다. 이러한 자체 헷지 비중은 절반을 넘어선다. 그 외 해외 증권사의 ELS를 사서 되파는 형태의 백투백(Back to back)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ELS 등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약 1%를 수수료로 챙긴다. ELS자금을 운용해 증권사가 1분기 벌어들인 이익은 3683억원으로 H지수를 기초로 한 ELS 발행이 제한됐던 1년전보다 159%나 급증했다. ELS의 절반 이상이 은행 신탁을 통해 판매되는데 ELS의 판매 수수료율은 1%에 달해 펀드를 팔아 받는 판매보수(작년 9월 기준 0.352%)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금감원도 “증권, 은행이 수수료 수입 극대화를 위해 변동성이 높은 기초자산으로 ELS를 적극 발행, 판매하고 있어 과도한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 3년 전 공포 여전..낙인 찍고 미상환된 ELS 16억원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큰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미상환 잔액은 지난달말 현재 29조2800억원(공모, 원화)에 달한다. 이중 조기상환일(발행 후 조기상환 평가일 6개월 전제)이 지났음에도 상환되지 못한 ELS는 4조1822억원. 3년전 H지수 폭락 사태로 원금손실구간(낙인, Knock-in)에 진입한 후 상환되지 못한 ELS도 있다. NH투자증권이 2015년 4~5월 H지수가 고점일 때 발행한 ELS는 이미 낙인(기준가액 1만4600선보다 45% 이상 하락)을 찍었기 때문에 만기일인 2020년 4월에 기초자산 평가액이 발행 당시보다 75% 이상으로 올라야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약 16억원 규모다.
지난해말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발행을 줄이자는 증권사들의 자율규제가 종료되면서 상반기 발행된 ELS 중 3분의 2 이상이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았다. H지수는 워낙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증권사가 다른 기초자산에 비해 선물·옵션 등을 통해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포지션을 더 많이 취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 있어 투자자를 모으기 좋다. 역으로 손실 가능성은 크단 얘기다.
다만 3년전 낙인을 찍은 ELS의 상당 부분이 올 6월말 만기가 도래했는데 확정된 손실은 크지 않단 분석이다. 3월말 현재 낙인에 진입한 미상환 ELS잔액은 9000억원인데 대부분 6월말에 만기가 도래돼 상환됐다. H지수가 최고점이었던 2015년 5월말 발행돼 9개월만에 50% 가까이 폭락, 낙인을 찍긴 했어도 만기일에 발행 당시 기준가액보다 70~75% 이상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올 1월말 H지수의 연 고점 당시에 발행된 ELS도 아직까지 낙인을 찍진 않았다. 통상 낙인은 발행 당시 기준가보다 40~45% 이상 급락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H지수의 최대 하락폭은 21.8% 수준. 그러나 변동성에 대한 위험은 여전하다. 일부 은행에선 H지수가 끼어있는 ELS를 아예 권하지 않았다. 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015년처럼 H지수가 급락하진 않겠지만 가장 불안한 지수이긴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