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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 해야죠'...365일 일 내몰리는 대한민국

송길호 기자I 2018.07.02 05:30:00

'주52시간 근로시대'의 역설...멀어지는 '워라밸'
대리기사 협회,“투잡 대리기사 올해 3만명 급증”
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소득보전 자구책
경기 급냉, 최저임금 급격 인상 등 정책적 요인
“취약계층에게 ‘저녁 있는 삶’ 남의 나라 얘기”

[이데일리 송길호 기자] 8년차 대리운전기사 김기철(가명·59·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생계형 ‘투잡(Two job)맨’이다. 밤에는 강남과 잠실 일대에서 본업인 대리운전을, 낮에는 송파에서 택배 배송을 한다. 물론 처음부터 투잡을 뛰었던 건 아니다. 올들어 갑자기 상황이 나빠졌다. 작년만해도 하루 4∼5차례 콜을 받아 이리저리 뛰면 한달 150만원 가량은 지갑에 들어왔다. 올들어선 그마저도 반토막이다. 결국 지난 5월부터 택배일을 시작했다. J업체 실버택배 기사로 건당 450원씩 받는 조건이다. 새벽 일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오전 9시30분부터 6시간 동안 70∼80개의 물건을 배송하면 한달 70만원 가량 입금된다. 김씨는 “하루 14시간 이상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지난해 대리운전일만 해서 올렸던 수입을 겨우 맞출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올들어 영세자영업자나 임시·일용직 등 한계 취업자 중심으로 생계형 투잡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24시간, 365일 근로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달부터 근로시간단축제가 본격화되면 저소득계층 외에 잔업이나 특근 등을 통해 부가적인 소득을 올렸던 정규직 일부 근로자들도 투잡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지향하는 정책목표와 노동현장과의 괴리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투잡은 체감경기의 바로미터인 대리기사 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1일 전국대리기사 협회(사단법인)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전국 대리기사수는 대략 25만명. 이중 8만∼12만명이 기존 일을 병행하는 투잡 대리기사로 추정된다. 김종용 대리기사 협회장은 “올해 시장에 진입한 대리기사의 절반인 2만∼2만5000명, 기존 대리기사중 추가로 다른 일을 시작한 1만여명 등 올들어 투잡 대리기사는 3만명 이상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내수경기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와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경직된 정책들이 취약계층에게 가장 먼저 타격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저임금이 실질적으로 역대 최고치인 16.4% 인상된 올해 저소득계층(소득 하위 20%기준)의 소득은 1분기(1∼3월)현재 전년동기 대비 8% 감소했다. 월평균 20만∼30만개씩 늘던 일자리는 지난 2월 이후 10만개대로 줄더니 5월에는 7만200개로 뚝 떨어진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단축과 같은 정책들이 소득과 고용을 늘리기는 커녕 오히려 한계계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며 “이들에게 ‘저녁 있는 삶’이란 남의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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