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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해 왔다. 이 협정으로는 이란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다”고 탈퇴 배경을 설명하며 이처럼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 때 만들어진 이란핵협정은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6개국이 이란의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게 핵심이다. 미국은 백악관이 90일마다 이란의 핵협정 준수 여부를 평가, 미 의회가 이란에 대한 제재면제 연장을 결정할 수 있게 한 이른바 ‘코커-카딘법’을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에 따라 오는 12일까지 제재 유예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이란 핵협정은 파기 수순을 밟게 된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시작할 것”이라며 대(對)이란 제재를 재개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문제는 미국이 이란핵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중동정세는 극대로 험악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군사적 충돌’은 물론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란과 크고 작은 군사적 마찰을 일으킨 이스라엘은 2015년 핵협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핵 합의를 탈퇴하는 즉시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후회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은 물론 이스라엘도 정조준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막판까지 양국 간 중재에 들어갔던 배경이다. 협정 참가국인 E3(영국·프랑스·독일)은 2025년 종료 예정인 핵 협정을 연장하는 한편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도 제한한다는 규정을 넣자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미국과 이란 모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이란핵협정 파기 여부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한반도 상황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정권에 따라 약속을 번복할 수 있음을 바로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이란이 핵협정을 완전히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한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이란핵협정 파기는 별개라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핵협정 파기 여부 움직임을 예의주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주북한 대사를 지낸 바 있는 류샤오밍 주 영국대사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지켜보고 있다. 만일 미국정부가 전임 행정부가 체결한 협의를 탈퇴한다면 이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