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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회장은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서울 종로5가에 임성기약국을 열었다. 당시 다른 약국에서 꺼려하는 성병 환자를 치료하며 약국을 키워내는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지난 1973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한미약품을 설립한 임 회장은 “남들과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며 끊임없이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는 해열제를 삼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먹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직장 내에 삽입하는 ‘써스펜좌약’을 만들었다. 써스펜좌약은 이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 필수 의약품으로 자리잡았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약을 만들지 않더라도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연구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임 회장의 경영 철학은 연구 현장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임 회장은 연구과제의 실패에 대해 단 한번도 문책하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영업이익(36억원)보다 38배 많은 1354억원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투입할 정도로 ‘신약 개발’에 대한 무서운 집념을 과시했다. 한미약품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매출의 15%가 넘는 5288억원을 R&D 비용으로 쏟아부었다.
한미약품 수출 성과의 핵심 기술은 ‘랩스커버리’라는 플랫폼 기술이다. 랩스커버리는 바이오의약품의 짧은 반감기를 늘려주는 기술로 투여 횟수 및 투여량을 감소시켜 부작용은 줄이고 효능은 개선하는 기술이다. 랩스커버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한미약품은 13년 동안 30명의 연구원이 이 기술에만 매달렸다.
임 회장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게 경영 전략을 수정하는 ‘실용 경영’으로 국내 제약업계 판도를 주도했다. 국내업체들이 복제약(제네릭) 영업에 몰두할 때 한미약품은 적극적인 특허전략으로 한발 빠르게 제네릭 시장에 진입했다. 2009년 두 개의 고혈압약 성분(암로디핀+로잘탄)을 결합한 ‘아모잘탄’을 내놓으며 복합제 시대도 열었다.
한미약품은 지난 2009년 R&D 파이프라인을 재편하면서 신약과 복합제에만 집중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또 전 세계적으로 개발 중인 신약을 모두 모니터링하고 항암제, 면역질환 등 시장성이 높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두드렸다.
임 회장은 남들이 내수 시장에 전념할 때 일찌감치 글로벌 업체와 손 잡으며 해외시장 동향도 읽어냈다. 한미약품은 복합제 개발을 위해 사노피,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과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머크와의 협력 관계를 통해 아모잘탄은 국산 개량신약 최초로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결국 임 회장의 ‘뚝심 경영’이 허황되게 보였던 “제대로 된 글로벌 신약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현실로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