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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김지숙(39) 씨의 말이다. 바지통의 작은 변화가 거리 패션 전체를 바꾸고 있다. 패션업계에 변화는 청신호로 인식된다. 변화의 폭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의 씀씀이도 커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화장을 거의 안 한 ‘쌩얼’에 검은 머리가 유행할 때 이미용 업계는 한숨을 쉬었다. 화장도 BB크림에 립글로즈 정도만 바르면 끝, 염색 손님이 뚝 끊기니 미용실마다 매출이 크게 줄어 울상이었다. 패션업계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모처럼 찾아온 변화가 숨통을 틔워줄지 관심사다.
◇“편안함이 좋아”..와이드 팬츠 인기
올해 들어 본격화된 와이드 팬츠의 유행은 가을·겨울까지 이어질 모양새다. 지하철이나 회사, 학교 등 도심 번화가 곳곳에서 통 넓은 바지를 나풀거리며 다니는 여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특히 폭이 넓은 검은색 바지를 복사뼈가 보일 정도로 짧게 입는 스타일은 도회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어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다. 반면 이전까지 패션시장을 주름잡았던 다리를 옥죄는 스키니 진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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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업체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의 와이드 팬츠를 앞 다퉈 출시하고 있다. 버커루는 이달 브랜드 모델인 AOA 설현의 이름을 딴 제품으로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하는 ‘하이 웨이스트 스타일’의 ‘설현 와이드 진’을 출시했다. 럭키슈에뜨 역시 복고풍 와이드 진인 ‘오 링 와이드 데님 팬츠’를, 오즈세컨은 일자 형태의 ‘세미 와이드 데님 팬츠’를 각각 내놨다.
LF(093050)의 컨템포러리 여성복 브랜드 질스튜어트도 세계적인 유행에 발맞춰 올해 처음으로 통이 넓은 바지를 선보였고, 이 제품이 인기를 끌자 소재를 달리해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 30대 이상 여성이 선호하는 브랜드 구호도 와이드 팬츠 열풍에 예외는 아니었다. 생산량을 20% 늘리고 스웨이드, 코튼, 리넨 등 천연 소재를 적극 도입했다.
의류업계에서는 와이드 팬츠가 하체 결점을 숨겨주고 다리가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몸에 딱 붙는 스키니 진을 불편해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올 가을과 겨울에도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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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팬츠의 유행은 판매 수치로도 확인된다. 패션 전문 쇼핑몰 아이스타일24가 지난 달 1일부터 24일까지 여성 와이드 팬츠 판매량을 살펴본 결과 전년 동기대비 87% 증가했다. 지난여름(7월 1~16일)에는 전년 대비 무려 102% 껑충 뛰었다. 반면 슬림핏의 대표 아이템인 스키니진은 판매량이 전년보다 39% 감소했다.
와이드 팬츠의 유행은 사람들의 스타일을 큰 폭으로 바꿔 놨다. 웃옷의 길이는 짧아지고 신발도 굽이 낮은 스니커즈에 로퍼 등이 선호되고 있다. 스키니 등 통이 좁은 바지가 유행했을 때 엉덩이를 충분히 덮고도 남을 길이의 상의가 인기를 끌었던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와이드 팬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신발로는 흰색 스니커즈가 첫손에 꼽힌다. 금강제화에 따르면 올해 1~9월 화이트 스니커즈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증가한 1만3000켤레가 팔렸다. 금강제화 측은 “검은색 통 넓은 바지에 흰색 셔츠나 스니커즈를 함께 매치해 세련된 룩을 연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면서 “겨울에는 굽이 두꺼우면서 목은 짧은 앵클부츠와 워커부츠가 와이드 팬츠와 함께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해 관련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과 반대로 남성의 바지통은 점차 좁아지는 현상도 이채롭다. ‘로열댄디족(Royal Dandy)’, ‘노무족(No more uncle)’ 등 외모에 신경 쓰는 남성이 40~50대로 확장되면서 슬림한 실루엣이 선호되고 있다.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유니클로는 이러한 고객 수요를 반영해 이번 시즌 한국과 미국에서만 특별히 남성 스키니진을 출시하기도 했다. 기존 제품인 슬림핏과 레귤러핏의 바지 또한 폭을 5mm 좁게 디자인을 변경했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여성은 남자친구의 옷을 입은 것과 같은 느낌의 보이프렌드진을 비롯한 ‘통 큰’ 스타일을 선호하고 반대로 남성은 몇 년 전 여성들이 그러했듯 ‘통 좁은’ 바지로 보기 좋게 가꾼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면서 “최근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은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뒤집는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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