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찍다"의 혁명…프린터를 써 물건이 박혀 나오게 하다

오현주 기자I 2013.07.11 07:07:00

총·자동차·집부터 음식·생체조직까지
가루·액체 얇게 쌓아 3차원 물건 복사
제조방식 뒤집는 산업혁명급 변화
윤리적·법적 논란…불법복제 우려도
…………………………………………
3D 프린팅의 신세계
호드 립슨, 멜바 컬만|464쪽|한스미디어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미국선 1970년대 말, 한국선 1990년대 초 ‘데스크톱 퍼블리싱’이란 용어가 떴다. 굳이 번역하자면 탁상출판 정도 될 거다. 개인용 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조금 전 끝낸 디자인을 바로 인쇄해낼 수 있다는 개념. 당시로선 눈부셨다. 프린팅과 관련된 비슷한 쇼크는 한 차례 더 있었다. 혹시 이 복잡한 절차를 기억하는가. 기계식 카메라로 필름을 빛에 노출시킨 뒤, 암실서 약품에 담가 현상하고, 인화지를 잘라 에어브러시와 화학약품으로 편집한다. 사진, 그 변신도 놀라웠다. 필름도 없는 카메라에 찍힌 피사체를 무한히 뽑아내다니.

그런데 이런 ‘획기’쯤은 아이들장난이 될 둣하다. 텍스트·이미지만 출력하던 ‘평면의 2차원 프린팅’이 손에 잡히는 물건을 찍어내는 ‘입체의 3차원 프린팅’으로 탈바꿈 중이기 때문. 최근 플라스틱 총을 3D 프린팅으로 찍어내는 일이 생기자 미국 정부는 총기설계도 파일의 인터넷 업로드를 금지했다. 고해상도 신체 스캐너의 가격도 급속히 하락 중이다. 많은 이들이 유사시에 대비해 ‘신체 디자인 파일’을 만들어두려는 붐 덕이다. “3D 프린팅으로 장기를 대체할 인공 인체 부품을 찍어내는 건 아주 쉬운 일”이 됐다.

산업혁명급 변화라 칭하길 주저하지 않는 ‘3D 프린팅’의 움직임이 가파르다. 뉴욕 코넬대 교수와 전문 기술작가, 두 명의 선두급 연구자들이 3D 프린팅이 빚어낼 미래를 세세히 들여다봤다. 기술·산업적 측면을 넘어 사회적 파장까지 전부를 짚었다.

▲미래경제 진두지휘할 플랫폼…현실이 공상과학으로

3D 프린팅이 뭔가. 쉽게 설명하자면 컴퓨터에서 일러주는 디자인파일의 지침을 따라 한층 한층 재료를 얇게 쌓아가는 ‘적층가공’으로 물건을 찍어내는 기술이다. 재료는 가루일 수도 액체일 수도 있다. 일정 패턴에 따라 단단하게 응고시키는 과정만 달리 필요하다. 컵, 안경 같은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집과 자동차, 음식과 생체조직까지 대상이 못 될 물체는 없다. 물건의 제조방식을 뒤집는 변혁. 3D 프린팅은, 과거처럼 재료를 잘라내거나 금형을 만드는 주조가 불필요하단 의미의 다른 말이다. 제조업에서 더욱 흥분하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형공장에서 똑같은 물건을 반복생산할 일이 없어진다.

이런 첨단기술이 ‘메이커 운동’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저자들은 주의를 기울였다. 물건을 직접 만들고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에서 기술 발전을 유도했다는 거다. 이는 거부감 없이 3D 프린팅을 받아들이고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인지도 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통의 변화도 뒤따를 예정이다. 3D 프린팅은 초기 투자비용으로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바꿔 말해 맞춤형 디자이너가 직접 고객과 상담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이들을 위한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 역시 서서히 구축되는 중이다.

▲환경친화적 청정 생산이 가능한가

반복형 대량생산에서 맞춤형 소량생산으로의 진화가 몰고 올 강점은 환경 부문에서 도드라진다. 시간과 비용은 물론 폐기물까지 줄일 수 있다는 논지다. 특히 금속기술에서 뚜렷하다. 3D 프린팅 작업이 끝나고 남은 금속 분말을 100% 재사용한다는 거다. 원재료의 90%까지 폐기물을 남기던 전통적인 금속제조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만 잘못 생산된 3D 프린팅 제품들이 여기저기 쌓일 수 있는 위협은 남는다. 맞춤형이라면 탄소사용량까지 대폭 줄인다지만 의미없는 물건이 계속 찍혀 나온다면 재앙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관건은 재료. 옥수수껍질, 왕겨 같은 식물로 만든 플라스틱이라면 환경친화적 대안일 수 있겠다고 했다.

▲빛나는 미래? 모조품시대도 같이 온다

‘누구나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다.’ 3D 프린팅이 ‘혁명’일 수 있는 건 이 지점에서다. 하지만 과연 빛나는 미래만 펼쳐 놓을 건가. 실제 지난해 해블루라는 온라인 총기상은 일부 3D 프린팅된 플라스틱 부품을 사용해 22구경 권총 제작에 성공했다. 200회까지 작동한단다. 디자인에 든 비용은 달랑 30달러(약 3만 4000원).

첨단이라고 예외가 있겠는가. 윤리적·법적 논란거리를 쌓아두고 벌써부터 우려가 높다. 모든 소유물이 불법복제에 노출되는 부작용은 떠안고 가게 됐다. 통제가 쉽지 않을 거란 예측도 가능하다. 결론은 자명하다. 모조품 전성시대에 대비하는 거다. 정확한 물리적 복제, 제한 없는 디자인 영역, 기술 없는 생산활동 등등, 책이 펴놓은 3D 프린팅의 장기는 곧 무기가 될 수 있다. 혁신에 몰입하느라 대책을 놓친 게 책의 흠이라면 흠이다.

3D 프린팅 기술은 교육·보존을 위해 유물을 복제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왼손이 원래 설형문자, 오른손이 3D 프린트로 찍어낸 복제품. 아래는 복제품의 확대 이미지(사진=한스미디어).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